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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강대국 핵폭탄만 2만2000개, 핵능력 키우며 북 도발 토양 제공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핵 강대국들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핵확산방지조약(NPT)이 1970년 발효됐지만, 핵 강국들이 핵무기 감축 대신 강화에 골몰하면서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에 토양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핵전력 현대화 매진해와 #10년 간 1조 달러 투입, 핵확산방지조약의 취지에 어긋나 #트럼프 당선되자마자 "핵 능력 대대적으로 확장해야" #같은 날 푸틴도 "미사일방어 돌파 위해 핵 강화 필요" #영국 핵잠 현대화 나서고 마크롱도 핵잠서 시뮬레이션 참관 #5개국 핵폭탄만 2만2000개, 미ㆍ중 등 강대국 간 관계도 나빠 #NPT 무시하고 핵개발 나선 북한의 도발 자초했다는 비판

 191개 국가가 참여한 NPT는 군비와 관련해 가장 성공적인 조약으로 꼽혀왔다. NPT는 냉전으로 핵무기 확산이 한창이던 1968년 체결됐다. 당시 핵무기를 갖지 않은 나라들은 개발을 포기했고, 핵보유국들은 우선 핵무기를 감축하고 최종적으로 비핵화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군비 축소 대신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핵 보유 강대국들은 핵전력을 현대화하는 데 집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핵무기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트위터에 “미국은 세계가 핵무기에 관한 분별력을 되찾을 때까지 핵 능력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트럼프의 핵 전력 강화 방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선언한 ‘핵무기 없는 세상’ 구상을 뒤집은 것이었다.
 트럼프의 핵 강화 발언이 있던 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모스크바에서 국방 문제에 대해 연설하면서 “전략 핵무기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현존하거나 앞으로 개발될 미사일방어 체계를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미사일의 성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러 정상이 한 목소리로 핵전략 강화를 앞다퉈 천명한 것이다.

영국은 핵잠수함 트라이던트의 핵무기를 현대화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영국은 핵잠수함 트라이던트의 핵무기를 현대화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탑승했던 프랑스 핵잠수함 르 테리블.

마크롱 대통령이 탑승했던 프랑스 핵잠수함 르 테리블.

 영국은 일부 핵무기를 폐기했지만 트라이던트급 핵잠수함의 핵무기를 현대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프랑스 역시 핵 타격을 통한 억지력을 의미하는 ‘포스 드 프라프(force de frappe)’를 높이려고 노력해 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4일 대서양의 핵잠수함에 탑승해 미사일 발사 시뮬레이션에 참관하기도 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력에 대응하기 위한 명분으로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중국은 핵 전력에서 두 강대국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

중국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 등을 선보이면 핵전력을 강화해오고 있다.

중국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 등을 선보이면 핵전력을 강화해오고 있다.

 비정부기구인 영미안보정보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제외한 5개 핵 보유국의 핵폭탄만 2만20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 보고서는 “핵무기 감축을 위한 다자 외교의 필요성은 냉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높아졌다"며 “핵확산방지에 대한 국가 간 신뢰는 닳아 헤어졌고, 대화도 활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대국 간 관계가 악화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이 긴장 관계를 노출하고 있으며, 최근 1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핵무기 현대화를 위해 1조 달러(약 1131조원)가 투입됐다고 해당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 와중에 핵무기에 대한 관심은 북한과 이란 등 특정 사례에 대해서만 집중됐을 뿐이며, NPT 회담은 2020년까지 열릴 계획도 잡혀 있지 않은 실정이다.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국내에서도 일부 정당을 중심으로 NPT 탈퇴 요구가 나오고 있다. 가디언은 “한국과 일본이 핵 무기 개발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비이성적으로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말했다"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예방 차원의 군사 공격을 감행할 경우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핵무기 개발 경쟁에 돌입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7월 유엔에서는 122개국이 모든 핵무기를 철저하게 금지하는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려 했으나 오히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이 현재 안보 환경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응했다고 가디언은 소개했다.

군부대를 시찰 중인 김정은 [AFP]

군부대를 시찰 중인 김정은 [AFP]

 NPT 가입으로 핵 물질 제공 혜택을 받았다가 탈퇴한 뒤 핵무기 개발에 매진하고, 러시아산 미사일 엔진을 밀수입해 핵탄두 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북한의 문제점이 심각하지만 핵 군비 확산 경쟁을 벌여온 강대국들도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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