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5000명 찾는 대구 '김광석길'…관할 구청 일방적 재정비 사업 추진에 예술계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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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김광석길 입구에 세워진 김광석의 동상.[사진 대구 중구청]

대구 중구 김광석길 입구에 세워진 김광석의 동상.[사진 대구 중구청]

대구 중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하 김광석길)'을 둘러싸고 지역 예술가들과 관할 구청이 갈등을 빚고 있다. 김광석길이 전국적 인기를 모으면서 중구청이 이곳을 재정비하려고 하자 김광석길 조성 사업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이 '구청의 일방적 사업 추진'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중구청 '김광석길 관광인프라 개선사업' 추진 #조성사업 참여했던 예술단체는 배제하고 진행 #예술단체들 "사업중단, 민관협의체 구성해야"

김광석길은 '영원한 가객(歌客)'이라는 별명을 가진 고(故) 김광석(1964~96)을 주제로 한 골목이다. 골목 입구에 세워진 통기타를 든 그의 동상, '서른 즈음에' 같은 노래가 끊임없이 골목에 이어지면서 추억을 자극한다. 평일엔 1000~2000여 명, 주말엔 5000여 명이 방문하는 대구의 관광 명소다. 지난해에만 1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찾았다.

대구 김광석길에 그려진 김광석의 벽화.[사진 대구 중구청]

대구 김광석길에 그려진 김광석의 벽화.[사진 대구 중구청]

김광석길의 가장 큰 볼거리는 골목을 따라 그려진 40여 개의 벽화다. 2010년 김광석길 조성사업이 이뤄지기 전까지만 해도 쇠락한 재래시장에 지나지 않았던 이곳을 되살린 것도 이 벽화들이다. 당시 지역 예술가들과 상인들은 대구가 고향인 가수 김광석의 노래 제목을 주제로 방천시장 옆 350m 골목에 공동으로 벽화를 그렸다.

명소로 변한 김광석길은 방천시장을 포함한 주변 대봉동 상권까지 되살렸다. 현재 김광석길 주변엔 90여개의 식당·카페가 들어서 있다. 최근엔 유품 전시관인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까지 생겼다. 빠르게 상권이 살아난 탓에 땅값과 임대료도 동시에 폭등해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yfication·낙후된 지역이 개발된 후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정도다.

폭 4m, 길이 350m의 김광석 길 콘크리트 벽에 환하게 웃는 김광석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사진 대구 중구청]

폭 4m, 길이 350m의 김광석 길 콘크리트 벽에 환하게 웃는 김광석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사진 대구 중구청]

지역 예술가들이 최근 반발하고 나선 이유는 중구청이 '김광석길 관광인프라 개선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중구청은 지난달 16일 입찰공고를 내고 김광석길에 있는 벽화 40여 점 중 25~30점을 연말까지 교체할 업체를 모집했다. 예산 2억원을 들여 관광객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김광석의 대표곡 '이등병의 편지'를 모티브로 한 '훈련소로 가는 열차' 조형물과 홍보입간판도 설치하기로 했다.

지역 예술단체들은 중구청이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당초 김광석길 조성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을 배제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구지회, (사)인디053, 니나노프로젝트예술가협동조합 등 단체들은 민·관이 함께 만든 김광석길에 대한 중구청의 일방적인 행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대구 김광석 길.[사진 대구 중구청]

대구 김광석 길.[사진 대구 중구청]

이들은 성명을 통해 "'김광석길의 감성, 서정성, 예술성을 지키기 위했던 애초의 철학과 예술인들의 자율적 참여방식은 오간 데 없고 예술인은 그저 용역을 수행하는 '을'로만 취급하고 있다. 작품 역시 언제든지 행정의 입맛에 따라 그리고 지워도 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중구청의 사업 중단과 민관협의체 구성을 촉구했다. 이들은 4일 오후 김광석길에서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이창원 인디053 대표는 "김광석길은 조성 당시 지자체와 지역 민간 예술단체가 함께 조성한 공간"이라며 "김광석길이 전국적인 인기를 얻자 중구청이 이를 독점하고 작가들의 저작권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개선 사업을 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중구청 관계자는 "2010년 김광석길 조성 후 칠이 벗겨지고 낡은 벽화가 많아 이를 '리뉴얼'하려는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김광석길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과 상인, 예술가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의견을 수렴한 후 사업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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