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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즉시 항소”…노조원 평균 연봉 억대로

중앙일보

입력

31일 법원이 6년여 만에 상여금ㆍ중식비 등 일부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자 자동차업계에선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법원 “감당할 수 있다” vs 기아차 “당장 적자” #기아차 근로자 평균연봉 1억113만원으로 상승 #부품사 “법원이 법리에 매달려 중소기업 외면” #

특히 노조의 선의를 전제한 재판부의 판단을 두고 논란이다. 재판부는 “상호 신뢰를 기초로 하여 노사합의를 이루어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온 노사 관계”라고 전제하며 “근로자들이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라는 결과 발생을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재판부의 인식과 차이가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현대ㆍ기아차가 사드 보복 등으로 경영 위기에 처해있는데도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노사 협상 진행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또 재판부는 통상임금이 기아차의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 또한 현실과 차이가 있다. 법원이 1심에서 2만7424명의 원고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금액은 4223억원이다. 하지만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지급할 금액과, 소송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기간(2년 8개월 치)에 지급할 돈까지 전부 포함하면 1조억원가량의 재정 부담이 발생한다는 게 기아차 주장이다.

기아자동차는 "상반기 영업이익(7868억원)을 고려하면, 3분기 실적은 적자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기아차는 사드 보복 여파와 노조 파업 등 각종 악재가 이어지면서 2000년 그룹 설립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정규직 근로자로만 구성된 기아차 노조와 비정규직 간 위화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로 기아차 근로자 2만7424명은  1인당 평균 1540만원을 더 받게 됐다. 이 금액이 과거 3년 치(2008년 10월 ~ 2011년 10월) 연봉의 미지급분이고, 기아차 지난해 평균연봉(9600만원)을 감안하면, 기아차 근로자들의 연봉은 1억113만원으로 상승한다. 기아차 노조가 공식적으로 ‘억대 연봉 노조’ 반열에 올라선 셈이다.

우광호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2014년 자신의 논문에서 “기타수당ㆍ초과수당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사업장 규모별 임금 격차가 더 커져 일부 근로자가 근로의욕을 상실하고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다”고 기술했다.

통상임금 소송 1심ㆍ2심에서 승소한 현대차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최종심에서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소송을 시작하지 않은 계열사로 소송이 번질 수도 있다.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이거나 진행할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기아차를 포함해 모두 13개사에 달한다.

 자동차 부품업계에선 “중소 부품업체를 법원이 외면했다”는 입장이다. 신달석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법원이 법리에 매달려 현실을 도외시했다”며 “이번 판결로 5000여개 부품업체 중 존폐를 다투는 회사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판결은 최근 금호타이어 근로자들이 낸 통상임금 청구 소송에서는 2심인 광주고법이 내린 판단과는 정반대다. 광주고법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며 신의칙에 따라 미지급 수당을 사측이 줄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신의칙이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 사법의 대원칙이다.

 결국 ‘신의칙’ 과 ‘경영상 어려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노사간 갈등의 불씨는 더 커질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확한 잣대가 없다보니 일단 소송부터 해보자는 ‘로또식 소송’ 증가가 우려된다”며  “통상임금 소송은 1심과 2심 판결이 자꾸 엇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명확한 판단 기준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재계는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판결 직후 “임금의 범위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맺은 약속을 기준으로 규정했다”며 “약속을 뒤집고 소송을 건 노조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노사합의를 준수한 사측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감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희철ㆍ윤정민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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