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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단가 후려치는 중 합작사 … 베이징현대 협력사 줄도산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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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대자동차 중국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사장 J씨는 올봄부터 밀린 납품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주 날벼락 같은 연락을 받았다. “납품대금 지급 사정이 연말까지 원활하지 않을 듯하니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J씨는 “이제는 한 달을 버틸 여력도 없다”며 “10여 년 이상 현대차와 거래해 왔는데 이참에 사업을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현지 공장 재가동됐지만 불씨 여전 #현대 - 생산 중국 측 - 재무·판매 맡아 #중국 측, 판매 줄어 수익 악화되자 #납품업체 재료비 25% 절감 요구 #현대 측 거부하자 납품 대금 안 줘 #4000여 업체 수개월치 돈 못 받아

중앙일보가 입수한 베이징현대 협력업체가 작성한 베이징현대의 이사회 논의 관련 자료. [예영준 특파원]

중앙일보가 입수한 베이징현대 협력업체가 작성한 베이징현대의 이사회 논의 관련 자료. [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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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중국 법인의 협력업체는 모두 사정이 똑같다. 현대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만 200개가 넘고 2·3차 벤더와 물류 등 연관 분야까지 합치면 협력사는 4000여 개에 이른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협력업체들이 평균 3.5개월(현대차 측 집계)간 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자칫 연쇄 도산의 위기에 빠져 있다. 그중 한 곳인 이너지(중국명 베이징잉루이제·北京英瑞杰)가 지난주 플라스틱 연료통 등 부품 납품을 거부해 현대차 공장 4곳이 ‘올 스톱’ 되는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가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차는 30일 베이징현대 공장 4곳이 가동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만 개의 부품 가운데 볼트 1개라도 빠지면 전체 생산라인이 멈출 수밖에 없는 만큼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언제 재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현대차 베이징 공장 4곳이 중단됐던 조업을 재개했지만 베이징현대 협력사 4000여 업체는 여전히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해 연쇄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연합뉴스]

현대차 베이징 공장 4곳이 중단됐던 조업을 재개했지만 베이징현대 협력사 4000여 업체는 여전히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해 연쇄 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 사진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연합뉴스]

‘현대 위기’의 1차적 원인은 판매 부진이다. 이 때문에 현대는 올해 판매목표량을 당초의 125만 대에서 80만 대로 낮추고 공장 가동을 대폭 줄이고 있다. 3교대 24시간 체제로 돌던 라인이 지금은 1교대 8시간만 돌고 있다. 그나마도 직원들이 생산라인에 배치되는 시간보다 교육이나 작업장 청소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잔업 수당을 받지 못해 실질 수입이 줄어든 직원 중에는 야간 대리운전 기사 등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이징 핑구(平谷) 지역의 부품 협력업체 10여 곳에서는 지난 5월 직원들이 임금 보전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현대 측은 판매량이 반 토막 난 이유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반한 감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사드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차의 전략적 판단의 아쉬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현대차의 판매량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또 다른 우려는 베이징현대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다. 베이징현대는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중국 국유기업인 베이징기차가 50대 50 비율로 합작해 세운 현지법인이다. 생산은 현대가, 재무·판매는 베이징기차가 분담하는 구조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면 납품대금을 절반가량이라도 지급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재무 권한을 가진 베이징기차가 이익 보전을 주장하며 납품대금 지급을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와 베이징기차는 지난달 19일과 31일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두 차례 베이징현대 이사회를 열었다. 여기서 중국 측 합작사인 베이징기차는 올해 목표이익인 55억 위안(약 8400억원)을 채우기 위해서는 협력업체 재료비를 25% 절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대는 “협력업체 부담이 가중되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납품 단가를 계속 억제해 왔는데 추가로 25%를 낮추면 협력업체들은 이익을 거의 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업계 관계자는 “이익금 배당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되면서 베이징기차가 납품대금을 계속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판매량 급감으로 인한 수익 감소를 (협력업체들의) 원가 삭감으로 보충해 애초 설정한 배당금을 받아야겠다는 요구는 몽니에 가깝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서울=손해용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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