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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대차, 중국내 협력업체에 올봄부터 납품대금 지급 밀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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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베이징현대차 3공장 전경. 신경진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베이징현대차 3공장 전경. 신경진 특파원

 현대자동차 중국 공장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사장 J씨는 올봄부터 밀린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원료ㆍ소재 대금 내랴 직원들 월급 주랴 나가는 돈은 그대로인데 들어오는 수입은 6개월째 제로다. 현대 측에서 들은 것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주 날벼락 같은 연락을 받았다. “납품대금 지급 사정이 연말까지 원활하지 않을 듯하니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J씨는 “이제는 한 달을 버틸 여력도 없다”며 “10여년 이상 현대차와 거래를 해 왔는데 이참에 사업을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의 베이징현대차 2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서 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베이징현대차 2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서 있다. 신경진 특파원

현대차 중국 법인의 협력업체는 모두 사정이 똑같다. 현대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만 200개가 넘고 2ㆍ3차 벤더와 물류 등 연관 분야까지 합치면 협력사는 4000여개에 이른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협력업체들이 평균 3.5개월(현대차 측 집계)간 대금을 지급받지 못해 자칫 연쇄 도산의 위기에 빠져 있다. 그 중 한 곳인 이너지(중국명 베이징잉루이제ㆍ北京英瑞杰)가 지난주 플라스틱 연료통 등 부품 납품을 거부해 현대 공장 4곳이 ‘올 스톱’되는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가 점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베이징현대차에 부품 납품을 중단했던 중·불 합작기업 이너지(베이징잉루이제)의 공장. 신경진 특파원

베이징현대차에 부품 납품을 중단했던 중·불 합작기업 이너지(베이징잉루이제)의 공장. 신경진 특파원

베이징현대차에 부품 납품을 중단했던 중·불 합작기업 이너지(베이징잉루이제) 공장의 정문. 신경진 특파원

베이징현대차에 부품 납품을 중단했던 중·불 합작기업 이너지(베이징잉루이제) 공장의 정문. 신경진 특파원

현대차는 30일 베이징현대 공장 4곳이 가동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만개의 부품 가운데 볼트 1개라도 빠지면 전체 생산라인이 멈출 수밖에 없는 만큼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언제 재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협력업체들의 부도가 현실화되면 현대의 중국 현지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이 와해되고 생산라인 전반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다.
1차 협력업체들 가운데 수십곳은 지난 7월 연명으로 현대에 탄원서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장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 간부 직원 M씨는 “이너지는 그나마 프랑스와 중국의 합작업체여서 그런 일이라도 벌여보지만 현대에만 목줄을 매고 있는 한국 업체들은 법적 대응이나 항의 행동은 엄두도 못낸다”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의 베이징현대차 1공장 정문. 신경진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베이징현대차 1공장 정문. 신경진 특파원

‘현대 위기’의 1차적 원인은 판매부진이다. 30일 현대ㆍ기아자동차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중국 판매량은 모두 43만947대(현대차 30만1천277대ㆍ기아차 12만9천67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3% 줄었다. 말그대로 반토막이 난 셈이다. 7월 판매량도 지난해 대비 37% 줄었다.

이 때문에 현대는 현대는 올해 판매목표량을 당초의 125만대에서 80만대로 낮추고 공장 가동을 대폭 줄이고 있다. 팔리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기보다는 생산량을 줄여 원가 및 재고 부담을 덜자는 뜻에서다. 3교대 24시간 체제로 돌던 라인이 지금은 1교대 8시간만 돌고 있다. 그나마도 출근하는 직원들이 생산라인에 배치되는 시간보다는 교육이나 작업장 청소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전언이다. 한 관계자는 “잔업 수당을 받지 못해 실질 수입이 줄어든 직원 중에는 야간 대리운전 기사 등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이징 핑구(平谷)지역의 부품 협력업체 10여곳에서는 지난 5월 직원들이 임금 보전을 주장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감원을 하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1차 협력업체인 한 중견 협력업체는 1700명 직원 가운데 600명을 내보냈다. 현대차 초기부터 함께 한 협력업체 사장 L씨는 "중국에서 사업을 한 지 20여년만에 처음으로 직원수를 줄였다"고 말했다.

현대측은 판매량이 반토막난 이유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 배치에 따른 반한 감정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사드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기는 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현대차의 전략적 판단의 아쉬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현대의 판매량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또 다른 우려는 베이징현대의 의사결정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다. 북경 현대는 한국의 현대자동차와 중국 국유기업인 북경기차가 50:50의 비율로 합작해 세운 현지법인이다. 생산은 현대가, 재무ㆍ판매는 북경기차가 분담하는 구조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면 납품대금을 절반 가량이라도 지급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며 “재무 권한을 가진 북경기차가 이익 보전을 주장하며 납품대금 지급을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본지가 입수한 베이징현대차 협력업체가 작성한 베이징현대차의 이사회 논의 관련 자료. 예영준 특파원

본지가 입수한 베이징현대차 협력업체가 작성한 베이징현대차의 이사회 논의 관련 자료. 예영준 특파원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와 북경기차는 지난달 19일과 31일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두 차례 북경현대 이사회를 열었다. 여기서 중국측 합작사인 북경기차는 올해 목표이익인 55억위안(약8400억원)을 채우기 위해서는 협력업체 재료비를 25% 절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대는 “협력업체 부담이 가중되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납품 단가를 계속 억제해 왔는데 추가로 25%를 낮추면 협력업체들은 이익을 거의 낼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업계 관계자는 “이익금 배당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되면서 북경기차가 납품대금을 계속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판매량 급감으로 인한 수익 감소를 (협력업체들의)원가 삭감으로 보충해 애초 설정한 배당금을 받아야겠다는 요구는 몽니에 가깝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들은 은행 대출마저 쉽지 않은 상태다. 베이징의 한 한국계 은행 임원은 “현대 협력업체들이 예금을 모두 인출해갔고 추가 대출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의 위기가 단시일안에 해결될 기미가 없어 은행으로서도 선뜻 대출을 해 주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사드 문제로 반토막난 판매량과 급격한 경쟁력 하락, 여기에 중국 합작업체의 이익금 보전 요구가 겹쳐 현대차의 중국내 서플라이 체인을 구성하는 협력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여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서울=손해용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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