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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추가 제재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9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는 의장 성명을 채택했다. 15개 이사국이 참석한 이날 긴급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사진 유엔 홈페이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사진 유엔 홈페이지]

의장 성명의 내용은 기존의 언론 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 성명은 북한에 대해 “더 이상의 도발이나 핵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모든 기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제재결의와 언론성명의 중간단계인 의장성명 채택 #대북 석유수출금지 카드, 중국 러시아 극력 반대 #북한이 더 강력하게 도발해야 추가제재 카드 가능 #

의장성명은 그동안 주로 채택해온 언론성명에 비해 격이 높다. 결의안처럼 실행에 비중을 두지는 않았지만, 안보리가 현사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는 ‘뷰(View)’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다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할 뿐 아니라 다음 제재안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긴급회의가 세시간 넘게 진행된 사실에 비춰 안보리가 온갖 산통을 겪으면서 의장성명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로 나뉜 양 진영이 치열한 기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미국은 카드를 훤히 보여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대북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북한을 경고한 가운데, 니키헤일리 미국 유엔대사는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 기자들에게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무책임하다”면서 “안보리가 뭔가 중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북한을 거세게 비판했다.

벳쇼 고로 주유엔 일본대사 또한  “북한이 가려고 하는 방향을 바꾸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 모였다”고 말했다.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날아갔으니 더욱 강력한 제재를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유엔 관계자는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이 앞으로 북한에 대해 할 수 있는 제재로 무엇이 남아있는지를 주로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앉히기 위한 제재와 압박 등 다양한 외교적 조치를 일컫는다.

외교가에서는 앞으로 남은 제재 가운데 ‘뭔가 중대한 조치’는 북한에 대한 석유수출 금지 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 핵ㆍ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쓸 수 있는 카드인 만큼 중국과 러시아가 극력 반대해왔다. 지난 5일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71호에서도 석탄과 철, 철광석 등의 전면 수입 금지는 포함됐지만 석유는 빠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날 “미ㆍ일 양국 정부가 안보리에서 대북 석유금수 조치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미국 측이 이날 회의에서 북한에 원유 수출금지를 요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석유수출 금지 제재는 미국과 일본이 언제 어디서든 꺼내들 수 있기 때문에 시점에 상관없이 살아있는 카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니키 헤일리(오른쪽)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 대사. [AFP=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니키 헤일리(오른쪽)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 대사. [AFP=연합뉴스]

한쪽은 강력한 제재를, 다른 한쪽은 기존의 언론성명 채택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양측이 중간지대인 의장성명으로 수긍하고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헤일리 미국대사는 미사일 발사 하루 만에 결의안을 도출하는 게 지난하고 고단한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날 류제이 중국 대사는 “좀더 지켜봅시다”라며 의기양앙하게 회의장에 들어갔다. 미국이 손쉽게 추가제재안을 통과시키기 힘들 것이라는 뉘앙스였다. 때문에 미국이 이날 긴급회의 결과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장성명 수준에서 일단 만족했을 것이라고 외교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주유엔 한국대표부 관계자는 “미국이 주도해 새로운 결의안 2371호를 만든지 한 달도 안돼 북한이 이를 무시하고 연속으로 미사일을 쏘아올렸으니 언론성명보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면서 “추가제재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무마하면서 공적인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의장성명으로 합의를 보게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북한이 이번 성명마저 무시하고 도발을 계속 이어간다면, 의장성명이 중국과 러시아도 어쩔 수 없이 대북 석유수출 금지 조치에 동참해야 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벳쇼 대사도 의장성명 채택 직후 ‘다음 조치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부터 시작해서 다음 조치를 논의할 것”이라면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의장성명에 이어 강력한 결의를 채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의장성명을 다음 작업을 위한 디딤돌로 삼았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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