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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도 길어야 8년 … 난 여기서 16년 했으니 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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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래틀은 내년 초 베를린필 예술감독을 그만두지만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 계속 거주한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축구하고 음악을 배우기에 너무나 좋은 도시”라고 했다.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래틀은 내년 초 베를린필 예술감독을 그만두지만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 계속 거주한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축구하고 음악을 배우기에 너무나 좋은 도시”라고 했다.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베를린필)를 2002년부터 이끌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62). 2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축제 공연장 대기실로 래틀은 쾌활하게 걸어들어왔다. 리버풀 태생으로 버밍햄 시립 오케스트라(CBSO)를 18년 이끌었고 그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로 직행했던 영국 지휘자다운 활발함이 보였다. 그는 내년 초 베를린필을 떠난다.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달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역할을 시작한다.

베를린필 지휘자 사이먼 래틀 #11월 서울 무대 끝으로 영국 복귀 #한국 청중들 반응 아주 감성적 #연주 음원·영상 디지털화 작업 #돈도, 품도 많이 들지만 해야할 일

16년동안의 베를린필 예술감독은 어떤 종류의 경험일까. 어떤 리더십이 135년 역사의 오케스트라, 그것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클라우디오 아바도 같은 지휘자가 거쳐간 악단을 이끌 수 있었을까.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래틀에게 물었다.

꼭 30년 전인 1987년에 베를린필을 처음으로 객원 지휘했다.
“32세 지휘자가 이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 당연히 두려움과 공포를 가진다. 게다가 그때는 아티스트 매니저라는 것도 없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말러 교향곡 6번을 연주하기 위한 모든 재료를 들고 갔다. 무거운 연주복 케이스와 악보를 세명이 나눠들고 연주자 출입구를 찾기 시작했는데 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리허설 5분 전에야 도착했다.”
그때 들은 오케스트라 소리는 어땠나.
“리허설 15분쯤 지나고부터 갑자기 이게 엄청난 즐거움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내 지휘에 따라 빠르게 반응하는 연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못 본 새로운 소리를 발견했다. ‘카라얀 사운드’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영국 지휘자가 독일의 명문 악단을 맡았다. 문화 차이는 없었나.
“물론! 언제나 있다. 음악은 경계가 없는 언어지만 영어와 독일어는 안 그렇다. 예를 들어 영국식 유머가 문제였다. 우리 영국인들은 문제가 있을 때 벽에 부딪혀 돌파하다가 쓰러지지 않는다. 대신 유머를 사용해서 돌아간다. 그런데 내가 오케스트라 앞에서 유머를 섞어 말하면 독일 단원들은 ‘아, 이제 쉬는 시간이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유머는 쉬고 놀 때만 하는 것이니까.”
어떻게 극복했나.
“극복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 서툰 독일어 때문에 아직도 못 알아듣는 단원이 많을 거다. 한번은 내가 리허설 중 어떤 말을 했더니 오래된 단원이 새로 온 단원에게 속삭이며 통역을 하더라. 단원들과의 소통은 처음부터 어려웠고 지금도 아주 어렵다. 하지만 그게 아주 나쁜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베를린필에서 ‘이민자’다. 이민자는 잘 듣고 작은 것도 섬세하게 봐야 한다. 듣는 사람이 돼야만했고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소통하려 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좋았다.”
단원들과 소통한다고 느껴질 때는.
“얼마 전 마침내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페라 전막을 연주하게 됐을 때 그 곡을 얼마나 많이 함께 연주했는지 깨달았다. 함께 40~50번을 연주한 곡도 많다. 이제는 단원과 나 사이에 공통의 언어가 생겼다. 독일어도 영어도 아닌 언어다.”
베를린필을 맡은 후 연주 음원·영상을 디지털로 제공하고(디지털 콘서트홀),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키즈 콘서트 같은 교육에 힘을 쏟았다. 전통이 강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어떻게 변화로 이끌 수 있었나.
“항상 까다로운 일이다. 문제는 디지털 콘서트홀이었다. 예산이 정말로 많이 필요한 사업이고, 단원들로서는 인생이 피곤해진다. 매주 자신의 연주가 녹음·녹화되고 전세계로 배포된다고 생각해보라. 게다가 돈도 더 안주면서 말이다. 만약 내가 이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면 단원들이 ‘미쳤다’고 했을 거다. 다행히 아이디어는 오케스트라 사무국에서 나왔다.(웃음)”
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2013년부터 선언한 건가.
“미국 대통령 임기도 4년이다. 재임을 해도 길어야 8년이다. 지치고 늙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 대통령 임기를 4번이나 했다. 충분한 시간이다. 지휘는 스스로를 완전히 소모하는 직업이다.”
과거에는 한 오케스트라에 더 오래 머무는 지휘자도 있었다.
“예전엔 그랬다. 하지만 지금 누가 그런가?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 독재가 아닌 평등한 관계가 필요하듯 지휘자의 재임 기간도 변화하고 있다.”
런던심포니의 ‘상임 지휘자(chief conductor)’란 명칭을 ‘음악 감독(music director)’으로 바꾸고 그 자리로 가는데.
“내 임무는 그저 일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특히 런던심포니에서 나는 이미 출발한 기차에 올라타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다. 런던심포니에는 콘서트홀이 정말 필요한데 이미 건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걸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현재 런던심포니가 연주하는 바비칸홀은 너무 오래됐고 충분치 못하다. 좋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훌륭한 바이올린이 필요하듯, 좋은 오케스트라에는 좋은 홀이 필요하다.”

래틀은 11월 19~2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래틀과 베를린필은 2005년 이후 4번 한국을 찾았다. 5번째인 이번 공연은 래틀과 베를린필이 함께 하는 마지막 무대다. 래틀은 “한국에서 연주할 때면 청중이 아주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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