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남달라 극장’ 또 역전 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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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LPGA투어 데뷔 시즌 2승을 거둔 박성현이 신인상 외에도 상금·다승·최저타수까지 주요 4개 부문 1위를 넘본다. [오타와 AP=연합뉴스]

LPGA투어 데뷔 시즌 2승을 거둔 박성현이 신인상 외에도 상금·다승·최저타수까지 주요 4개 부문 1위를 넘본다. [오타와 AP=연합뉴스]

국내에서 그의 별명은 ‘남달라’ 였다. 남들과 뭔가 다르다는 뜻에서 붙은 수식어다. 미국에서 그는 ‘수퍼 루키(super rookie)’ 로 불린다. 신인을 뜻하는 ‘루키’ 만으론 모자라 ‘수퍼 루키’다.

한국 선수 LPGA 5연속 우승 신기록 #캐나다 오픈 4타차 뒤집고 정상 #마지막날 7타 줄여 최종 13언더 #LPGA 데뷔 첫 시즌 2승째 올려 #21억원 상금 1위, 올해 선수 2위 #신인왕 등 4대 타이틀 휩쓸 수도

박성현(24·하나금융그룹·사진)은 국내에서 휴식을 취한 뒤 지난 18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LPGA투어에 데뷔하면서 다시 한 번 루키가 됐지만 앞에 ‘수퍼’라는 단어까지 붙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미국 무대 데뷔 첫 승을 거뒀던 그는 “올 시즌 목표 1승은 이뤘다. 이제 두 번째 우승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성현은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의 헌트&골프장에서 끝난 캐나다 퍼시픽 여자 오픈 4라운드에서 버디만 7개를 기록해 7타를 줄여 합계 13언더파로 역전 우승했다. 2위 이미림(27·NH투자증권·합계 11언더파)을 2타 차로 제치고 우승상금 34만5000 달러(약 3억8600만원)를 받았다. 박성현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얼떨떨하다”면서도 “완벽했던 경기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캐나다 여자 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는 박성현. [오타와 AP=연합뉴스]

캐나다 여자 오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하게 웃는 박성현. [오타와 AP=연합뉴스]

데뷔 첫 해 2승을 거둔 박성현을 앞세워 한국 선수들의 LPGA투어 연속 우승 기록은 5개로 늘었다. 2015년 4개 대회 연속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 시즌 LPGA 23개 대회 중 한국 선수가 우승한 건 13개다.

박성현은 이번 우승으로 ‘역전의 여왕’이란 또 하나의 별명을 갖게 됐다. US여자오픈 당시 그는 선두에 3타 뒤진 채 최종 라운드에 들어가 승부를 뒤집었다. 박성현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큰 대회에서 얻은 자신감이 거침 없는 질주로 연결됐다. 이번 대회 3라운드까지만 해도 박성현은 선두에 4타 뒤진 공동 1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종 라운드에서 절정의 샷 감각을 과시했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84.6%, 그린 적중률도 83.3%나 됐다.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던 퍼트 실력도 한결 좋아졌다. 최종 라운드 퍼트 수는 28개. 그는 “퍼트와 쇼트게임에 점수를 매기라면 US오픈 이전까지는 40점 정도였지만 이젠 7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날 7언더파를 몰아친 비결은 뭘까. 박성현은 “챔피언 조에서 경기를 하면 긴장이 된다. 그렇지만 이번엔 한참 앞 조에서 경기를 펼쳐 마음이 편했다”면서 “자신감을 잃지 않고 편안하게 경기를 했더니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또 하나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 우승을 추가했다. 지난 2015년 국내 메이저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생애 첫 프로 우승을 차지하더니 미국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이번에 우승한 캐나다 퍼시픽 여자 오픈도 1973년 창설된 캐나다 내셔널 타이틀 대회다. 1973년 초대 대회 때 조셀린 보라사가 우승한 이후 단 한 명의 챔피언도 배출하지 못한 캐나다는 올해 대회에서도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 우승으로 박성현은 LPGA투어 상금랭킹 1위(187만8615 달러·약 21억원)로 올라섰다. 신인상 경쟁에선 1285점으로 2위 에인절 인(미국·539점)을 큰 점수차로 따돌리고 독주하고 있다. 올해의 선수상과 최저타수상 부문에선 각각 2위로 올라섰다. LPGA투어 역사상 신인왕과 올해의 선수상·최저타수상·상금왕 등 4개 타이틀을 모두 휩쓴 선수는 1978년 낸시 로페즈(60·미국)가 유일하다. LPGA투어 사무국은 최근 홈페이지에 “박성현의 상승세를 로페즈와 비교하기엔 이른걸까”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박성현은 “미국 올랜도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아토를 본 지 오래 됐다. 당분간 아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집 부근의) 디즈니랜드에도 가보려 한다”고 말했다. 2주 동안 휴식을 취할 박성현의 시선은 이제 프랑스 에비앙으로 향한다. 박성현은 다음달 14일부터 프랑스 에비앙-르뱅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도 또다시 우승에 도전한다. 박성현은 지난해 초청 선수로 이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박성현은 “캐나다 오픈에선 샷과 퍼트 감각이 무척 좋았다. 이 느낌을 잘 유지해서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도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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