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산업경쟁력 높이려면 임금체계 선진화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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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우리나라 대다수의 제조업체 임금체계는 기본급과 상여금, 성과급, 시간 외 근로에 따른 가산수당(연장·야간·휴일), 기타수당의 5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세부적으로 개인성과급, 경영성과급, 정기상여금, 특수상여금, 연차유급휴가수당·기술수당·근속수당·가족수당·교통수당 등이 있어 매우 복잡한 형태다.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 여부 논란 #복잡한 임금체계가 노사 갈등 불러 #선진국처럼 직무·성과 중심 단순화 #최저임금도 기존 수당 정리가 우선

모든 임금 항목의 산정기초가 되는 ‘기본급’ 자체가 근무 연차에 따라 매년 자동 인상되는 호봉제이기 때문에 국내 임금체계는 개인별 능력이나 성과, 생산성과는 연관성이 낮고 생애 주기에 따른 생활비 보전 성격이 강하다. 이런 임금체계는 산업화 초기에 단순 기능과 저임 노동에 의한 저가제품 생산단계에서 기업이 근로자들의 생계를 뒷받침하는 데는 적합했 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임금 수준도 선진국에 육박하며,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기업의 가격 경쟁력과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하는 후진적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시장이나 경영 여건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임금체계다 보니 노사가 매년 임금항목별로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임금투쟁을 반복하면서 인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의 임금정책과 관련돼 통상임금, 최저임금, 평균임금이 있는데 이들 개념이 불명확하거나 서로 상충하는 면이 있어서 사법적 쟁의소송을 유발하고 부작용을 수반하면서 결국 기업의 임금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통상임금’은 시간 외 근로수당의 산정 기준으로써 지난 30년간 정부지침과 노사 간 합의로 ‘기본급’만을 포함했는데, 3년 전에 대법원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과 수당까지 포함하도록 새롭게 정의함에 따라 회사별로 법적 싸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간 기본급 700%를 정기 상여금으로 지급해온 회사라면 갑자기 통상임금 산정기준 임금이 50% 이상 높아지게 돼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

‘최저임금’은 ‘기본급’만을 대상으로 강제적용 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올리면 대다수 임금항목이 자동 상승한다. 현재 대다수 제조업 근로자 의 연봉이 통상 월 기본급의 약 25배 정도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시간당 1000원 올리면 월 20만원, 연봉으로는 500만원이 인상된다. ‘평균임금’은 연차유급휴가수당과 퇴직금의 산정 기준이 되는데 근로자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주기위해 ‘지급된 모든 임금 총액’을 기초로 산출된다. 이러한 통상임금, 최저임금, 평균임금 제도도 경제·경영적 측면보다는 사회적·사법적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어 최근 최저임금도 높아지고 통상임금에 상여금까지 포함되게 됨에 따라 국내 임금체계 전 항목에서 기업 경쟁력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의 임금체계는 기본급, 성과급, 시간 외 수당의 3개 구조이며 기본급은 연차나 나이와 무관하게 직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과급은 지급률이 공식처럼 정해져 있어 다툼의 소지가 적다. 즉 노사가 임금항목별로 다투지 않고 기업 경쟁력을 종합평가하고 협의하고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이고, 임금협상도 3~4년 주기로 한다. 통상임금이나 평균임금에 관한 법 규정도 아예 없다. 일본의 경우도 호봉제를 직무급으로 전환중이며 과도기적으로 직능급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한국도 직무와 성과를 중심으로 임금항목을 3~4개로 통합하고, 통상임금·최저임금·평균임금도 합리적으로 재정비함으로써 노사 간 협상뿐만 아니라 정부의 임금정책 결정에 있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 있는 임금 패러다임을 선행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노사 간 윈윈 뿐 아니라 사회통합과 경제발전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현안인 통상임금 이슈도 회사의 임금경쟁력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고 대신 임금체계 선진화라는 국정과제를 풀어가는 계기로 삼는 것이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 고 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선진 경쟁국들과 ‘맞짱’을 뜰 수 있는 새로운 임금체계 속에서 임금이슈를 걸러내야 우리 제조업이 생기를 찾을 수 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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