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의 삶 한 눈에… 국가기록원, 강제이주 영상 공개

중앙일보

입력

1937년 8월 21일 구(舊) 소련은 정부는 극동(동아시아)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 17만여 명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고단한 삶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선봉중학교 교실에서 고려인 학생이 한글로 '친목한'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선봉중학교 교실에서 고려인 학생이 한글로 '친목한'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관련 영상물 ‘선봉’을 공개했다고 20일 밝혔다. 영상은 국가기록원이 카자흐스탄 영상기록보존소의 협조를 받아 직접 발굴한 뒤 지난 6월 기증받았다.

1946년 제작된 영상 '선봉'… 고려인들의 다양한 생활상 담아 #여성 예술가 이함덕씨·원형에 가까운 '아리랑' 등 작품도 담겨

1946년 제작된 선봉은 구 소련 정부가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성공적 정착을 선전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7년 강제이주한 뒤 10여 년 만에 제작한 영상으로 집단농장(꼴호즈·Kolkhoz)을 중심으로 고려인이 정착한 과정과 다양한 생활상을 담고 있다.

고려인 노동영웅인 김만삼의 지휘에 따라 벼를 수확하는 고려인들. [사진 국가기록원]

고려인 노동영웅인 김만삼의 지휘에 따라 벼를 수확하는 고려인들. [사진 국가기록원]

당시 고려극장의 여성 예술가인 이함덕씨(1914~2002)를 비롯해 연출가 연성용의 노래 ‘씨 활활 뿌려라’ 등도 영상에 담겨 있다. 영상에 포함된 ‘아리랑’은 우리에게 알려진 노래와 달리 1926년 나운규가 제작한 ‘아리랑’ 이전에 불린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전문가들을 평가하고 있다.

1932년 연해주에서 창립한 고려극장은 고려인들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간으로 현재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자리 잡고 있다.

중앙아시아 집단농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즌 고려극장 단원들. [사진 국가기록원]

중앙아시아 집단농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즌 고려극장 단원들. [사진 국가기록원]

진용성 아리랑박물관장은 “이번에 공개한 아리랑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아리랑과 다른 노래”라며 “중앙아시아에서 불렸던 원형에 가까운 음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서는 한글 학습과 디딜방아·음식·놀이문화 등 고려인들의 다양한 생활상도 담겨 있다. 고려인 집단농장 학교 간판에 ‘선봉중학교’라고 쓰인 모습과 학생이 칠판에 ‘친목한’이라는 단어를 쓰는 장면도 볼 수 있다.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신랑.신부와 하객들. [사진 국가기록원]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신랑.신부와 하객들. [사진 국가기록원]

이 밖에도 한국 음식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모습, 발로 디딜방아를 찧는 모습, 춤과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서 고려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게 국가기록원의 설명이다.

이상진 국가기록원장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고단했던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영상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세종=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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