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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 비싸서 고전한 돈가스집, 1년 만에 대박난 이유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17.한성돈까스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17회는 돈가스(2014년 10월 15일 게재)다.

아귀찜골목서 돈가스 팔아 

한성돈까스 최철호 사장은 일본식 돈가스가 낯설던 80년대 후반부터 두께 1cm가 넘는 두툼한 돈가스를 만들어 왔다. 김경록 기자

한성돈까스 최철호 사장은 일본식 돈가스가 낯설던 80년대 후반부터 두께 1cm가 넘는 두툼한 돈가스를 만들어 왔다. 김경록 기자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 4번 출구 뒷골목엔 오래된 2층 양옥집이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더 눈길을 끄는 이곳은 두툼한 돼지 생등심을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를 파는 '한성돈까스'다. 1986년 당시 36살이던 최철호(67) 사장이 가게를 연 후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파동 숙명여대 기숙사 앞쪽에서 기사 식당을 운영하다 잠시 쉬고 있던 최 사장은 아귀찜 장사를 하려고 이 가게를 인수했다. 지금 가게가 있는 곳은 80년대엔 아귀찜 가게가 몰려있는 아귀찜 골목이었다. 장사가 잘되던 가게라서 인수했는데 정작 가게를 열려고 보니 불과 50m 떨어진 곳에 원래 이 집 주인이 다시 아귀찜 식당을 낸 걸 알게 됐다. 화가 날 법도 한데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도저히 아귀찜은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는 다른 메뉴를 생각했다. 최 사장은 “당시 명동에서 잘나가는 돈가스집을 하던 지인 얘기를 듣고 돈가스를 팔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일본서 배운 두툼한 돈가스

한성돈까스는 30년 전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김경록 기자

한성돈까스는 30년 전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김경록 기자

기사 식당을 할 때 이미 돈가스를 팔아본 경험이 있었지만 다른 돈가스 집과 차별화한 맛을 내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친척이 일본에 있어서 자주 오갔는데 그때마다 먹었던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가 한국에서도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일본에서 현지식 돈가스 만드는 법을 2개월 동안 다시 배웠다.
자신만만하게 가게를 열었는데 처음 1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루에 고작 돈가스 여덟 장밖에 팔지 못한 날도 있었다. 가격이 문제였다. 당시 다른 가게 돈가스는 2000원이 넘지 않았는데 한성돈까스는 2500원으로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가격을 내리지 않고 품질을 유지하며 버텼다. “직장인이 먹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럽지만 정말 맛이 있다”는 단골 손님들 말에 힘을 얻었다. 90년대 들어서자 상황이 역전됐다.
“90년대 들어 물가가 계속 올랐어요. 다른 식당들은 다 값을 올렸는데 우리는 올리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1~2년이 지나니 우리집 돈가스가 상대적으로 싼 편이 됐어요. 그때부터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외환위기때 손님 더 늘어  

한결같이 생등심만 고집한다. 2011년부터는 무항생제 브랜드육으로 바꿨다.김경록 기자

한결같이 생등심만 고집한다. 2011년부터는 무항생제 브랜드육으로 바꿨다.김경록 기자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자 늘 줄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 한성돈까스가 인기를 끌자 주변에 돈가스집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다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도 가게 주변엔 돈가스 전문점이 한 곳도 없다. 최 사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맛있고 경쟁력 있는 식당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신 덕분에 문닫는 식당이 부지기수였던 90년대말 외환위기 때 오히려 손님이 늘었다.
최 사장은 31년째 한결같이 냉장 생등심만 사용한다. 좋은 고기를 쓰기 위해 2011년 무렵엔 무항생제 브랜드육으로 바꿨다. 이렇게 질 좋은 고기를 직접 다지고 소금·후추 간을 한 뒤 빵가루를 입혀 튀긴다. 돈가스뿐만 아니라 깍두기나 소스도 직접 만든다.

일본처럼 오래 가는 가게가 꿈

사람들로 붐비는 한성돈까스 본관.김경록 기자

사람들로 붐비는 한성돈까스 본관.김경록 기자

한성돈까스에도 위기가 있었을까. 최 사장은 돼지고기값이 급등한 2014년을 꼽았다. 값이 두 배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위기는 온 가족이 힘을 합쳐 극복했다. 두 아들 기정(38)·기석(36)씨 도움이 컸다. 대를 잇겠다며 가게에 나온 것만으로도 최 사장이 큰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3~4대를 잇는 일본 식당처럼 자식에게 물려주겠다고 결심했다”며 “일찌감치 절대 남에게 안주겠다고 선언했는데 다행히 아들들이 뜻을 따라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분점 내자는 제안을 그 동안 모두 거절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덧붙였다.

품질 유지위해 직영점만 고집 

한성돈까스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주방에서 돈까스를 썰어낸다. 김경록 기자

한성돈까스는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주방에서 돈까스를 썰어낸다. 김경록 기자

요즘은 아버지 대신 큰 아들 기정씨가 대표를 맡아 전반적인 가게 운영을 하고 있다. 기석씨는 별관 운영을 맡고 있다. 30년 전 모습 그대로인 본관과 달리 젊은 여성들이 즐겨찾던 별관은 2017년 3월 이전했다. 그리고 6월엔 롯데백화점 본점 푸드코트에도 가게를 열었다. 기존에 운영하던 강남역·광교점까지 매장이 하나둘 늘고 있지만 모두 직영이다. 기정씨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대규모 프랜차이즈 형태로는 물량이나 퀄리티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버지가 키운 브랜드를 오래 유지하도록 힘을 기울이는 한편 계속 바뀌는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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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메뉴: 돈까스 9000원, 비후까스 1만5000원 ·개점: 1986년 ·주소: 서울시 서초구 강남대로 97길 8(잠원동 21-5) ·전화번호: 02-540-7054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설·추석 3일씩 휴무) ·주차: 가능(7대)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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