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나면 최악의 경우 파산 직면할 수도…기업 경영에 타격 주는 쪽으로 방향 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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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숨지는 것과 같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작업장 가동이 즉시 중지된다. 2차 재해 방지대책이 마련되고, 안전성이 보장될 때만 가동을 재개할 수 있다. 사실상 작업장의 장기 폐쇄를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형사처벌도 강화된다.

정부,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 마련해 중점 추진 #산재발생하면 장기간 영업정지로 경영상 심각한 타격 유발 #개선대책 내놓고, 현장 적용 않으면 영업 재개 못 하도록 #형사처벌 수위도 대폭 강화…징역형 하한 도입해 무조건 처벌 #안전사고 나면 하청업체와 함께 원청도 공동 책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도 산재 적용…감정노동자 보호법 추진

또 외부 전문업체에 맡기던 유해·위험성이 높은 작업은 원청(대기업)이 직접 수행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는 외부 위탁이 금지되고, 원청의 정규직이 직접 수행해야 한다.

자료:고용노동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고용노동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부는 17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의결했다. 이번에 의결된 내용은 박근혜 정부 당시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던 것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번 대책은 대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산재가 발생하면 경영상 심각한 손해를 감수하도록 간접 제재조치를 대폭 강화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자료:고용노동부

대표적인 게 사망과 같은 중대 산재 발생에 따른 조치다. 중대 산재가 발생하면 즉시 작업을 중지시킨다. 곧바로 경영활동을 정지시키는 셈이다. 기업은 2차 재해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방지책을 내놓더라도 실질적인 현장 적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작업이 뒤따르지 않으면 작업을 재개할 수 없다. 산업안전법 제52조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작업 재개 과정도 까다로워진다. 그동안은 근로감독관이 판단해 작업중지 명령을 해제했다. 앞으로는 근로자의 의견을 들어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심의위원회에서 작업 재개 여부를 결정한다. 작업계획의 안전성이 보장되는 경우에만 중지명령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으로선 제조와 영업, 건설 작업이 전면 중단돼 경영상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예컨대 안전사고가 난 건설현장에선 필요할 경우 공사 설계변경 등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작업 중지에 따른 인건비, 공사지연배상금 등 이에 필요한 비용은 모두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취약한 건설사는 최악의 경우 파산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재산상 손실을 입히는 조치와 함께 법을 개정해 형사처벌도 강화할 계획이다. 사망 등 중대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지금은 7년 이하 징역,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벌금이나 집행유예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이를 뜯어고쳐 징역형에 상한만 두던 규정을 고쳐 하한(징역 1년 이상)도 명시해 실질적인 처벌이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벌금액도 1억원에서 10억원 이하로 상향 조정한다.

이와 별도로 안전조치 의무위반으로 사내하청 근로자가 사망하면 원청에 제재적 성격의 과징금을 별도로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자료:고용노동부

중대 재해가 한 번 발생하면 기업과 사업주는 삼중 제재를 받게 되는 셈이다. 경영상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정부는 또 원청(대기업)의 책임을 대폭 강화했다. 그동안은 도급이나 위탁을 받은 안전관리전문업체가 산업안전에 대한 관리나 책임을 져왔다. 앞으로는 안전보건관리를 원청의 정규직이 수행해야 한다. 산업안전에 대한 책임도 원청과 발주자가 공동으로 져야 한다. 위반할 경우에는 원청이 하청와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되는 셈이다.

김왕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현재 도급 인가를 받은 위험 작업에 종사하는 하청 근로자가 852명 정도"라며 "이번 대책이 실행되면 아마 이들을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자료:고용노동부

건설업에 대해서는 불법 하도급에 대한 제재가 강화된다.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 작업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만약 불법하도급을 원청이 묵인했다면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중처벌된다.
프랜차이즈업체라면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각종 설비와 재료에 대한 위험성 정부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음식배달원과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영세자영업자가 운영하는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도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또 정신적 건강을 산업재해 보호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해 '감정노동자 보호 입법'을 추진한다. 이에 앞서 '고객응대 근로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보급하기로 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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