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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월 딸 둔 계란 취재기자의 ‘우리 애 계란 고르는 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큰일이네. 마침 계란이 똑 떨어졌어.”
 살충제 계란 사태가 터진 15일 밤 10시. 기사를 마감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비보가 날아들었다. 냉장고 상황을 점검해보니 당장 내 집 계란 수급이 급선무다. 27개월 딸의 주요 부식은 계란찜이다. 세 끼 중 한 끼는 계란찜을 먹는다.
 살충제 등 독성물질은 몸무게가 작게 나갈수록 인체에 치명적이다. 60㎏ 어른이 괜찮을 양도 10㎏ 아이 건강에는 문제가 된다. “계란 어디서 사야 하니? ○○마을? ○살림?” 가족들의 질문 이후 정리한 나름의 기준을 공유한다. 사흘간 농식품부와 식약처, 독성물질 전문가를 취재하며 판단한 ‘우리 애 계란 고르는 팁’이다.

초록색 '유기 축산물(ORGANIC)' 마크 구입 #'무항생제'마크와 '방사 유정란' 등 상품명 현혹 말아야 #비싸다면 '동물복지' 계란 잠시 내려놓고 #여름철 계란 최대한 덜 먹이는 게 상책

 ①상품명과 포장지 그림은 전부 무시한다. 

16일 오후 이마트 서울 용산점에서 직원들이 달걀을 진열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16일 오후 이마트 서울 용산점에서 직원들이 달걀을 진열하고 있다.강정현 기자.

  그동안 마트에서 ‘방사 유정란’, ‘목초먹인 계란’,‘무항생제 왕란’ 등 포장에 쓰인 이름을 보고 계란을 사다먹었다. 진열대에는 녹차, 유황, 약쑥, 마늘, 홍삼, 인삼, 황토 등 좋은 걸 먹여 낳았다는 계란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제품명과 계란의 안전성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푸른 들판에서 닭이 풀을 뜯고 있는 계란판 그림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어미 닭이 어떤 땅에 하루 몇 시간 방사됐는지, 사료로 줬다는 목초 위에 혹시 살충제를 뿌린 건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 대신 이번 사태로 일부 산란 농가의 비양심을 확인했다. 정상희 호서대 교수(임상병리학과)는 “사료 위에 뿌려진 살충제를 닭이 먹고 문제 계란을 낳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각된 살충제 계란 대부분은 ‘무항생제’ 마크가 붙은 친환경 농장에서 나왔다.

 ②초록색 ‘유기 축산물’ 마크를 찾아라. 

 현재로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친환경 계란은 ‘유기 축산물’ 계란이다. 농식품부가 유기축산 인증을 해 준 산란농장은 전국에 불과 15곳으로, 전체 친환경 농장(780곳) 중 2% 밖에 되지 않는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이번 전수조사에서 유기축산 농장 검사는 모두 끝났고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기축산 인증 조건은 다른 친환경 인증 조건보다 훨씬 까다롭다. 항생제·성장호르몬 사용 금지, 축사에 살충제를 쓸 수 없는 건 기본이고 반드시 농약·화학비료 없이 재배한 사료를 닭에게 먹여야 한다. 농장들이 규정을 어기고 살충제를 뿌리는 이유는 닭 진드기, 와구모(이)를 박멸하기 위해서다. 유기축산 농장에선 산란계 한 마리당 0.22㎡의 공간을 준다. 닭 사육 철재 우리가 통상 0.05㎡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넓다. 닭이 흙목욕으로 진드기나 이를 스스로 잡을 여지가 생긴다.

 ③너무 비싸다면 ‘동물복지’ 인증은 고집하지 말자. 

 

 계란에 대한 친환경 인증은 두 가지(유기축산·무항생제)가 전부다. 동물복지 인증은 별도다. 친환경육성법이 아닌 동물복지법(29조)을 따른다. 인증 기준을 살펴보니 초점이 ‘먹거리 안정성’보다는 ‘동물권(animal rights)’에 맞춰져 있다. 또 동물복지는 친환경과 달리 인증기준에 살충제(농약)관련 규정이 자세히 적혀있지 않다. 물론 좋은 환경에서 자란 동물이 건강한 먹거리를 주는 건 당연하다. 동물복지 농장이 친환경 농장보다 더 까다로운 기준으로 운영될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 인증이 곧 ‘친환경 보다 한 단계 높은 인증’을 의미하진 않는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 ‘안전성 가성비’를 생각해 유기축산 계란을 먹이는 게 낫겠다.

  ④여름엔 계란을 덜 먹인다. 

살충제 계란이 나온 경기도 양주 신선2 농장에서 닭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다.임현동 기자.

살충제 계란이 나온 경기도 양주 신선2 농장에서 닭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있다.임현동 기자.

 농가들이 규정을 어겨가며 살충제를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고온다습한 여름 닭에게 창궐하는 붉은 진드기와 ‘와구모’라고 불리는 이를 죽이기 위해서다. 이번 조사 때 살충제 계란이 나온 농장들도 올 봄(3월) 조사 때는 기준을 통과했었다. 허태웅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7~8월 혹서기에 진드기가 문제가 돼 살충제를 왕성하게 쓴다”고 말했다. 같은 농장에서 나왔더라도 봄·가을·겨울 계란은 안전하고, 여름 계란만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위험한 계절을 피해 먹이는 게 최선이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여름엔 가능한 계란 반찬을 줄이기로 했다.

 ⑤100% 안전한 계란은 없다. 

 ‘08마리’, ‘08LSH’, ‘09지현’, ‘08신선2’, ‘13정화’, ‘11시온’…. 암호문같은 난각(卵殼) 부호를 다 알아두는 게 능사가 아니다. 사흘간 취재 현장에서 거듭 내린 결론은 계란 한 알의 안전성이 ‘복불복’이라는 거다. 산란농장 전수조사는 농장마다 16~18개 계란을 샘플로 채취해 한다. 전문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수만개에 달하는 농장별 하루 생산량 중 극히 일부만 검사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살충제 계란 농장 명단이 추가로 나온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먹은 계란이 포함됐을지 모를 일이다.

  딸이 유독 계란찜을 즐겨 먹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육지책 대신 계란을 아예 끊는 방법을 고민했을 것 같다. 여기서 밝힌 팁은 기자 엄마의 개인적 판단이다. 모든 부모가 절대 신봉할만한 기준은 못 된다. 그래도 부모 마음이 다 같다고 했던가. 맘놓고 먹일 계란 한 알을 찾기 힘든 세상이다. 이번 사태 이후 정부가 친환경 인증 시스템이라도 엄격하게 관리하길 기대한다.

세종=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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