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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 수능, 동점자 쏟아질 텐데”… 대학들, 정시에 내신·면접 추가 검토

중앙일보

입력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 6곳의 입학처 관계자가 "수능 개편안이 적용될 경우 정시 전형에 학생부·구술면접 등 수능 외의 전형요소를 추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 6곳의 입학처 관계자가 "수능 개편안이 적용될 경우 정시 전형에 학생부·구술면접 등 수능 외의 전형요소를 추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2021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될 교육부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개편 시안이 공개되면서, 수능 중심인 현행 정시 전형에 고교 내신이나 구술 면접 등을 반영할 것을 검토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교육부 시안대로 절대평가 방식을 적용하는 수능 과목이 늘면, 변별력이 떨어지고 동점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학들 "수능 절대평가 확대, 수능만으로 정시 어렵다" #학생부 내신, 구술면접, 약식 논술 등 정시 추가 검토중 #고교 교사 "패자부활전 사라지고 학생 부담 가중" 비판 #전문가 "교육부, 개편안과 대입 전형 관리 계획 내놔야"

16일 중앙일보가 서울 소재 대학 6곳의 입학처장·입학사정관 등에 문의한 결과 6명 모두 “현재 중3 학생이 치르는 2021년 대입 정시 전형부터 수능 외에 다른 전형요소를 도입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위권 수험생이 몰리는 이들 대학이 정시 전형의 개편을 고민하는 주된 이유는 수능의 절대평가 과목 확대가 동점자 양산을 불러와, 수능 점수(등급)만으론 합격·불합격을 가리는 게 사실상 어렵게 될 것이라는 예상때문이다.

백광진 중앙대 입학처장은 “교육부의 개편 시안 1, 2안 모두 전영역 1등급 등 상위권 동점자가 늘어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때문에 상위권 수험생이 몰리는 대학에선 새로운 기준을 추가하지 않고 수능만으로 합격의 우선순위를 가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가 입시전문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과 함께 최근 6년간(2011~2016학년도) 수능 결과에 전 과목 절대평가 방식(2안)을 적용하자, 전 영역에서 1등급(90점 이상)을 받는 학생이 기존 상대평가 때보다 최대 13배 늘었다. 2015 수능의 경우 1140명이던 전 영역 1등급 인원이 절대평가를 적용하면 1만4830명으로 늘어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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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 일각에선 국어·수학·탐구영역을 상대평가로 남기는 1안이 채택될 경우 국어·수학·탐구의 난도를 높이고 수능과 EBS의 연계율을 낮추면 수능 성적만으로도 변별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백광진 처장은 “의대 등 최상위권이 몰리는 학과에선 2안은 물론 상대평가 과목이 남아있는 1안을 적용해도 동점자가 대량 발생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도 “1안 역시 현행 상대평가 수능보다 1등급 비율이 3~4배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시 전형에 추가 도입될 전형요소로 거론되는 건 주로 학교 내신(학생부) 또는 구술면접이다. 경희대·한국외대는 수능에 내신을 결합하는 방식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나민구 한국외대 입학처장은 “수시에 비해 정시전형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인 수능을 활용했다. 이같은 취지에서 수능에 결합할 지표로 학교의 공식적이고 계량화된 지표인 학교 내신이 적합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현 경희대 입학처장은 “구술 면접 같은 전형요소를 정시에 추가하면 정시 전형 기간이 길어지고 공정성 시비도 불거진다”며 “학교 내신을 쓰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처럼 정시 전형이 ‘수능+내신’으로 치러진다면, 정시전형과 수시 학생부 교과전형(학생부의 내신+수능 최저학력기준)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나민구 처장은 “‘수시=학생부, 정시=수능’이란 공식이 무너지고 사실상 정시와 수시가 하나의 전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성균관대 등은 수능에 구술 면접을 추가하는 방식이 낫다고 본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관계자는 “1, 2안 중 어떤 것이 채택되든 면접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구체적인 안은 수능 개편안과 ‘수능·EBS 연계’존폐 여부 등이 확정되면 논의할 계획”이라 밝혔다. 이상구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정시에 학생부(내신)을 추가한다면 학생부를 제대로 관리 못한 재학생, 재수생에게 열린 기회를 제공하는 정시의 ‘패자부활전’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다. 면접을 추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정시에 구술면접을 도입하는 방안, 면접 대신 ‘약식 논술’을 시행하는 방안 등을 놓고 고심 중이다. 국중대 한양대 입학팀장은 “구술면접이 도입된다면 학생부를 중심으로 교내 활동을 확인하는 수준의 ‘인성면접’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약식 논술은 고교 교육과정 내의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 글쓰기 역량을 확인하는 간소한 글쓰기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대학들의 움직임에 대해 서울 소재 사립대의 한 입학사정관은 “구술과 논술을 추가하면 대학의 인재상에 맞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정시에서 대학별고사를 도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부 고교 교사들은 “정시에 다른 전형요소가 추가되면 입시 지형도가 복잡하게 얽힌다”며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 곽영주 불암고 진학부장은 “대학들 뜻대로 입시가 변화하면 결국 수험생은 현재보다 어려워진 수능에 내신과 구술까지 삼중고를 겪게 되는 상황이 된다”고 비판했다.

‘대치동 스타 강사’ 출신인 이범 교육평론가는 “자칫하면 2021학년도 대입 수험생은 수능·내신·대학별고사를 한꺼번에 준비해야 해,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불린 2008학년도 수험생과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수능 개편안뿐 아니라 종합적인 대학 전형 관리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수험생의 불안감이 가중될 것”이라 말했다.
박형수·전민희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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