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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위안부 합의 언급 없이 “양자관계 넘는 동북아 협력관계로” 새로운 한일관계 규정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관계에 대해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양자관계 이상의 협력을 구현하겠다는 문재인식 ‘신(新) 한일관계’에 대한 규정이었다.

이는 북핵 위협이 고조화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안보 협력 필요성이 크다는 실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 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사 갈등과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을 분리해 접근하는 ‘투트랙 기조’도 다시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사와 역사문제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먼저 미래 발전에 방점을 찍은 뒤 “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며 과거사 언급으로 넘어갔다.

해마다 돌아오는 한국 대통령의 3·1절과 광복절 경축사는 한일관계에 있어 일종의 방향키 역할을 해 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한일관계에는 북핵 문제 등에 비해 적은 시간을 할애했다. 연설문을 기준으로 총 7415자 중 한일관계는 714자만 다뤘다. 순서도 거의 말미에 배치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역사를 직시해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역사 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에 부침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 등으로 한국민 감정에 상처를 줘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을 모았던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대신 문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다.

‘위안부 합의를 대다수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기존 입장에 비춰볼 때 합의를 부정하는 기조는 여전했지만, 재협상이나 파기의 뜻은 비추지 않았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을 전제로 하는 ‘배상’이 아니라 ‘보상’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눈길을 끌었다. 그 간 위안부 피해자 단체들은 일본의 배상을 요구해왔다. 보상은 법적으로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것이란 개념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과거사 문제에서 ‘인류 보편적 가치’와 ‘국제사회의 원칙’을 언급한 것은 이를 양자적 논리를 넘어 국제규범으로 풀자는 뜻으로 읽힌다”고 해석했다. 박근혜정부 때처럼 역사 문제로 한일 간 양자관계 전체를 막아놓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이날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 대금을 납부하고 일본 여야 의원 수십명이 신사 참배를 한 데 대해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은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조 대변인은 “일본의 정치인들은 역사를 올바로 직시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서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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