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시신 발견 농민에게 "보상금 지급 의무 없다" 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4년 7월 유병언씨의 시신을 최초 발견한 박모씨가 현장에서 상황 설명을 하는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지난 2014년 7월 유병언씨의 시신을 최초 발견한 박모씨가 현장에서 상황 설명을 하는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유병언씨의 시신을 처음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농민 박모(80)씨에게 정부가 신고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208단독 유영일 판사는 “박씨가 변사체의 신원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발견 신고를 한 것만으로 현상광고에서 지정한 신고를 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신고보상금 1억1000만원을 달라”는 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매실밭 농민 "유씨 추적 수사 중단에 도움" #법원 "유병언임을 알고 신고했어야 보상"

박씨는 지난 2014년 6월 12일 오전 9시 자신의 매실밭에 일을 하러 갔다가 부패된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유씨에 대한 현상수배가 내려진 지 22일 만의 일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유씨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섰지만 유씨가 이에 응하지 않고 도주하자 “특경법 위반 피의자 유병언 수배, 신고 보상금 5억원”이라고 현상광고를 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과 감정을 거쳐 발견 40일 만에 매실밭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씨 시신임이 밝혀졌다. 사진은 2014년 7월 전남 순천의 장례식장에서 유씨의 시신이구급차에 실리는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과 감정을 거쳐 발견 40일 만에 매실밭에서 발견된 시신이 유씨 시신임이 밝혀졌다. 사진은 2014년 7월 전남 순천의 장례식장에서 유씨의 시신이구급차에 실리는 모습. [프리랜서 오종찬]

박씨가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었다. 시신의 신원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40일간 부검과 감정 등을 거친 후의 일이었다. 박씨가 매실밭에서 본 것은 겨울용 점퍼 차림에 긴 바지, 흰 운동화 차림의 시신과 그 옆에 놓인 가방 속 빈 소주병과 막걸리병 등이었다. 박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누가 봐도 노숙인 같았고 유병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신이 유씨라는 것은 알지 못한 채 경찰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자’를 신고한 것이었다.

박씨는 “현상광고를 보면 유병언이라는 사실을 밝혀서 신고해야 한다거나 유병언이 검거돼야 한다는 것을 별도로 명시하는 조건이 없었다”면서 지난해 정부를 상대로 보상금을 지급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변사체 신고로 사체 신원이 발혀져 정부는 수사를 중단할 수 있었고 수사로 인해 하루 1억원 이상 발생했을 국고 손실을 방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박씨가 해당 사체가 유병언씨의 사체라는 점을 알고서 신고했다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고 변사체를 신고했기 때문에 보상금 지급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씨의 신고로 유병언 검거 수사가 종결돼 수사 비용이 더 이상 지출되지 않게 하는 이익을 입은 것은 맞지만 이는 변사체 신고로 인한 반사적 이익일 뿐 현상광고에서 지정한 신고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유 판사는 “보상금 지급의 전제가 되는 ‘유병언을 신고’하는 행위는 그 신고의 대상이 유병언이라는 점을 밝혀서 수사기관에 제보하는 행위를 말한다”면서 “신고 대상이 유병언이라는 사실을 밝혀서 신고하는 것이 보상금 지급의 전제가 되는 지정행위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이다”고 설명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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