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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우리 눈으로 … 독특한 눈길로 … 미술사를 다시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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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양미술사
이은기·김미정 지음, 미진사, 448쪽, 2만8000원

새로운 미술의 역사
폴 존슨 지음, 민윤정 옮김, 미진사, 820쪽, 4만5000원

20세기 후반 미술사 개론서의 대표선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다. 1950년에 나온 이 책은 400장이 넘는 도판에 3.6kg 거구를 자랑하며 오랜 세월 미술사의 표준 교과서 구실을 했다. 같은 해에 프랑스에서 나온 에밀 말의 '세계미술통사'나 호르스트 잰슨의 '미술의 역사'도 미술지식 대중화에 앞장선 베스트셀러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세계 미술계는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이들의 아성에 도발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그것이 유일한 미술사일까'.

미술전문출판사인 미진사가 국내 학자의 새로운 연구 경향을 소개하겠다며 만든 '미진아트히스토리'가 첫 번째 책으로 '서양미술사'를 펴낸 것은 때 맞춤해 보인다. 제임스 엘킨스(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사학과 교수) 같은 이는 기존 '서구 남성 중심의 서양미술사'가 저지른 편견과 오류를 걷어낸 자기 나름의 미술사를 쓰라고 부추길 정도이기 때문이다. 미진사가 이 책을 '한국인 정통 미술사가가 집필한 최초의 본격적인 서양미술사 개설서'라 자부할만하다. 공동저자인 이은기 목원대 교수는 "서양의 미술이 우리나라 미술현상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과 그 관계를 곁들이는 한편, 작품을 주문하고 감상한 수용자의 요구를 감안하면서 여성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집필 방향을 밝혔다. '첫 술에 배부르랴'는 옛 말을 생각하면 서양 미술사를 우리 눈으로 보자는 이들 목소리가 한국 미술계에 퍼져나가 이룰 열매가 더 기대된다.

이런 점에서 '서양미술사'와 함께 나온 '새로운 미술의 역사'는 즐거운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나는 내 자신을 교육하기 위해 책을 써왔다"고 말하는 폴 존슨은 언론인이자 역사가답게 미술사를 바라보는 새롭고 독특한 관점을 자유분방하면서도 깊이있게 보여준다. "미술에 대한 탐욕의 죄를 경계하라" "작품을 만든 미술가의 마음까지 꿰뚫어야 한다" "미술의 역사는 특별한 재능이 있고 고집과 의지가 강한 미술가들이 규범과 제한을 부수고 사회와 대중을 함께 끌고 나가 마침내 새로운 원칙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등 미술의 비밀을 찬찬히 음미한 대목이 많다. 도판이 거의 없는 800쪽짜리 책을 읽어낼 수 있는 진득함이 있다면 독자는 마침내 이 구절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고, 최고 수준으로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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