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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 인하 정부 압박에 통신업계 ‘자중지란’ 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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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통신요금 인하 문제로 정부와 이동통신 3사 간 갈등이 최고조로 달한 지난 9일과 10일,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연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찾았다. 알뜰폰 고객을 빼앗으려는 대형 이통사의 보조금(리베이트) 살포 행위를 단속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그동안 이통사들이 단말기 유통업자들에게 뿌린 문자메시지들도 증거자료로 준비했다.

고객 이탈 우려한 알뜰폰사업협회 #빅3 보조금 증거 수집해 단속 요청 #유통업자는 자급제 대비해 세 규합 #정부는 업계 반발에도 “인하 강행”

단말기 유통업자들도 바쁘다. 휴대폰 판매 상인들의 연합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와 별도로 ‘이동통신 집단상권협회(가칭)’가 지난 6일 발족했다.

테크노마트·전자상가 등 집단 상가에서 불법 보조금 지급 행위가 일어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집단 상가만 골라 단속하는 규제 당국에 집단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통신비 인하에 따른 유통업자 판매 장려금 축소, 단말기 자급제로 인한 실직 문제 등에도 목소리를 낼 채비를 갖췄다.

공정거래위원회·방통위 등 규제 당국을 앞세운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에 통신시장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와 이통사가 한 치 양보 없는 싸움을 하는 사이 칼자루를 쥔 규제 당국에는 알뜰폰 사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제보가 쏟아진다. 여기에 통신비 인하로 예상되는 풍선효과 해결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보니 단말기 유통시장 붕괴를 우려한 유통업자들도 세를 규합하는 형국이다.

우선 방통위는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과징금 폭탄을 예고하고 있다. 출고가 93만5000원짜리 갤럭시S8이 18만원에 팔렸던 ‘갤럭시 대란’은 지난 5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방통위는 ‘갤럭시 대란’의 불법 보조금 살포 행위 조사 기간을 올해 1월부터 8월까지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 과징금은 불법 보조금 지급 행위로 이통사들이 얻은 매출액에 비례해 산정되기 때문에 조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과징금 액수도 늘어난다. 통상 방통위는 불법 보조금 살포 행위의 경우 길어야 두 달가량의 조사 기간을 설정하지만, 이통사 제재 금액을 늘리기 위해 과도한 조사 기간을 설정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통신업계에선 벌써부터 방통위 과징금 예상액까지 계산해 놨다. 번호이동이 가장 잦았던 SK텔레콤은 1000억원, KT와 LG유플러스는 두 곳을 합쳐 800억원에 달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폭탄’을 맞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통신업계는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 이슈와는 별도로 방통위 과징금을 줄이기 위한 행정소송도 준비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대형 이통사는 물론 알뜰폰 사업자, 단말기 유통업자 등 통신 시장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의 불만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이유로 정부의 ‘외눈박이식 정책 집행’을 꼽는다. 대선 공약인 통신비 인하에만 모든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다보니, 다른 이해당사자를 아우르는 정책들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알뜰폰 사업자는 “정부가 통신비 강제 인하를 위해 대형 이통사만 상대하고 있는 탓에 매년 7월마다 이뤄지는 정부, 알뜰폰 사업자, 이통사 간 LTE(롱텀에볼루션)망 도매 대가 협상이 표류하고 있다”며 “LTE망 도매 대가가 낮아지면 고객 통신비 부담도 낮아질 수 있지만 이런 부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토로했다.

정작 규제가 필요할 땐 소극적이었다가 통신비 이슈와 맞물려 갑자기 규제를 강화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도 문제란 지적도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과기정통부에다 공정위·방통위까지 한꺼번에 통신시장의 ‘시어머니’가 늘어난 형국”이라며 “정부 규제는 사안에 따라서가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야 규제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통 3사의 반대에도 통신비 인하 정책을 강행할 뜻을 밝혔다.

유 장관은 이날 오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21회 과학창의축전’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통신비는) 국민 삶의 문제이니까 기업도 좀 양보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갈 길을 향해 (이통사들과)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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