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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한·미 FTA 개정, 동맹간의 신뢰 바탕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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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정진영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정진영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절차가 시작됐다. 미국은 한국에 보낸 서한에서 한미FTA 개정의 목표를 분명히 했다. 한·미 양국 간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측 주장의 핵심은, 한미 FTA 발효 이후 지난 5년간 미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가 2011년 132억 달러(약 15조원)에서 2016년 276억 달러로 불어났는데, 이것이 한미FTA가 미국에 불리하게 작동한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나 산업계는 당황스럽다. 문재인-트럼프 정상회담이 끝난 지 불과 12일 만에 소위 ‘FTA 청구서’가 날아 온 데다가, 미국의 주된 협상목표가 한국의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양국 간 무역수지 불균형의 원인부터 조사해보자고 요구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벌어볼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한미FTA 개정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새 정부는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우선 어떤 FTA 정책을 추구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지난 정부들처럼 소위 개방형 통상국가 모델을 지속해서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국내의 정책적 자율성과 사회통합의 유지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FTA 정책을 변경할 것인가. 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입장 정리가 돼야 미국과의 FTA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FTA 개정 협상을 앞두고 FTA 정책의 방향과 목표를 어디에 둘지 선택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자유무역의 원칙에는 어긋나더라도 무역 불균형 해소의 목표를 설정해서 한미 무역관계를 관리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다자적 자유무역 질서의 원칙에 기초해서 미국과 강력하게 협상을 해나갈 것인가. 국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할 때, 무역 협상은 이익의 균형을 달성해야 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계와 긴밀히 협의하며 우리가 미국에 요구할 것과 양보할 것을 정리해야 한다. 요컨대, 한미동맹과 한미FTA의 관계와 미래에 대한 선택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미 FTA 개정협상에 임해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는 종종 군사동맹을 앞세워 미국에 경제적 양보를 요구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더 이상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매년 5000억 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적자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나 미국에 안보를 의존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실력으로 감당이 안 되는 이상주의적 목표를 앞세워 안보도 잃고 경제도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새 정부의 FTA 정책과 한미동맹 관리의 큰 그림이 제시돼야 한다. 그래야 한미FTA 개정협상에 당황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진영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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