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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주권반환 20주년을 맞이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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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열전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유주열전 베이징 총영사·㈔한중투자교역협회자문대사

  ‘징역 3년에 벌금 3천만’의 도시

 3년간 홍콩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선배들은 ‘3년 징역에 3천만 원 벌금’이라면서 홍콩 근무를 걱정해 주었다. 홍콩 섬에 아파트를 얻어 살면서 집과 사무실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보면 주말이 되어도 도시 국가인 홍콩에서는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홍콩은 쇼핑과 관광의 중심지이니 서울에서 찾아오는 손님은 늘고 생활비는 비싼데 씀씀이는 커지고 그래서 3년 근무 기간에 빚도 상당히 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당시 ‘홍콩은 동서양이 만나는 매력적인 도시’로 홍콩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도 사실이다.
 홍콩의 3년 근무를 회상해 보면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 직전에 베이징 근무 후 홍콩으로 부임했기 때문에 베이징에서 쓰는 중국어(보통화)를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비싼 홍콩 물가를 피해 주말에는 이웃 광둥 성 선전에 가서 식사도 하고 귀로에는 값싼 야채를 사 오기도 하였다.
 선전에 가면 홍콩에서는 통하지 않던 보통화도 잘 통하고 음식도 맛있어서 하루 편하게 지내다가 홍콩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리고 중국 국내 여행을 할 경우 홍콩 공항을 이용하는 것보다 선전 공항을 이용하면 항공료도 훨씬 저렴했다. 그래서인지 3년 근무 기간 빚도 그렇게 진 것 같지는 않았다.

 홍콩 트레일  

 ‘3년 징역’이라고 할 정도로 갈 곳이 없다는 말도 맞지 않았다. 홍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갈 곳이 많았다. 홍콩 전체의 40% 이상이 야외공원(country park)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요 야외공원에는 트레일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하이킹) 코스로는 최적이었다. 내쇼날 지오그래픽에서도 홍콩의 트레일 코스를 세계 20대 베스트 트레일(World's Best Hikes: 20 Dream Trails)의 하나로 선정하고 있다. 세계적 미항인 홍콩은 다른 미항과 달리 산을 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드니도 미항이지만 산을 만나려면 80km 이상 내륙으로 들어가야 한다.
 홍콩은 높지 않은 산과 아름다운 남중국해 그리고 파란 하늘 그 속에 수 십 층짜리 고층건물이 밀집해 있다. 이러한 홍콩의 풍경도 아파트 안에서는 잘 안 보인다. 트레일 코스를 따라 탁 트인 산을 오르면 파란 하늘 아래 멀리 바다가 보이고 그사이로 장난감처럼 홍콩의 마천루가 눈에 들어오면서 홍콩에 사는 실감이 난다.
 홍콩에서 3년을 근무하면서 시간이 나면 사무실 동료와 함께 각종 트레일을 답사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도 챙겼다. 트레일에서 만나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홍콩의 자연 지리 그리고 역사를 알아갔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기 전의 홍콩의 옛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홍콩을 공간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홍콩의 기원

 홍콩을 이루고 있는 것은 홍콩섬과 주룽(九龍 Kowloon)반도 그리고 신계(新界 New Territory)이다. 홍콩섬과 주룽반도는 19세기 중반 제1, 2차 아편전쟁의 전리품으로 중국(淸)으로부터 할양받아 사실상 영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신계는 다르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일본에 패배하자 영국은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지키기 위해 주변의 신계가 필요했다.
  1898년 영국은 중국에 압력을 넣어 홍콩섬과 주룽반도의 6배가 되는 신계를 99년간 조차하였다. 영국으로서는 영구 조차의 효과를 기대하였는지 모르지만 세월은 흘러 99년이 되는 1997년이 닥아 왔다.
 당시 영국의 대처 수상은 조차 연장을 요청해 놓고 중국이 쉽게 응하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집권자 덩샤오핑(鄧小平)은 달랐다. 신계의 조차 연장은커녕 홍콩섬과 주롱반도도 불평등 조약으로 빼앗은 것이니 반환하라고 주장하였다.

 일국양제의 기발한 착상

 덩샤오핑은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돌려주지 않으면 신계에서 홍콩 쪽으로 가는 수도관이며 전력 등을 모두 끊겠다고 얼음장까지 놓는 한편 ‘일국양제(一國兩制 One country, Two systems)’라는 절묘한 해결 방안을 내놓고 영국을 설득하였다.
 1984년 홍콩반환협정이 발표되었다. 신계를 포함 영국령인 홍콩섬과 주롱반도를 모두 중국에 반환하고 그 대신 홍콩은 ‘홍콩인 통치(港人治港)’를 원칙으로 현재의 시스템을 2047년까지 50년간 유지하는 홍콩 기본법을 제정하기로 합의하였다.
 1997년 6월 30일 밤 영국을 대표하는 찰스 왕세자는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게 주권을 반환(hand over)하고  크리스  패튼 총독과 함께 왕실 전용 요트를 타고 홍콩을 떠났다. 7월 1일 0시를 기해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트럭을 나누어 타고 홍콩으로 진입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영국 식민통치 치욕을 씻어주는 비라고 했다.
 1841년 아편전쟁 당시 영국인이 홍콩섬을 점령하자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영국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홍콩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대륙으로 탈출할 것인가의 고민을 했다고 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1997년에도 홍콩 주민들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일부 홍콩인들이 캐나다 밴쿠버로 대거 탈출(移民)을 한 것도 그러한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베이 에리어 경제권’

 지난 7월 1일로 홍콩의 주권반환 20 주년인 동시에 홍콩기본법에 의한 홍콩특별행정구(SAR) 출범 20주년이 된다. 홍콩의 여성 최초 행정장관(Chief Executive)인 캐리 람(Carrie Lam) 장관의 취임을 축하하고 주권반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홍콩을 찾았다.
 지난 20년간 홍콩은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주권 반환 직후 아시아 외환위기 그리고 10년 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는 크게 출렁거렸지만 홍콩은 위기를 피해갔다. 홍콩정부의 부단한 노력과 중국 경제가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기 때문으로 본다.
 홍콩 반환 당시만 해도 중국의 경제는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중국의 홍콩화를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중국경제는 매년 GDP  7-8%의 고도성장을 통하여 세계 2위의 경제로 도약하면서 오히려 외부 환경에 취약한 홍콩 경제의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중국은 다시 한 번 경제 도약을 위해 일대일로 (一帶一路 Belt and Road) 정책과 함께 주장(珠江) 삼각주 지역 내의 경제통합을 목표로 홍콩 정부와 함께 ‘베이 에리어(Bay Area)경제권’을 추진하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주하이를 연결하는 40km의 해상 교량이 건설되고 있으며 선전에서 끝난 중국 대륙의 고속철이 홍콩까지 연장되어 홍콩은 도로와 교속철로 대륙과의 연결을 앞두고 있다.
 ‘베이 에리어 경제권’은 홍콩 및 마카오와 중국 광둥 성 9개 도시를 포함 인구 6,600만 명 이상의 광대한 시장이 된다. 홍콩은 바다의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중국을 포함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글로벌 슈퍼 커넥터(super-connector)의 역할도 하게 된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홍콩은 완전히 반환되어 중국의 일부가 된다. 2047년까지 홍콩과 중국은 하나의 경제로 동반성장의 길로 들어선다. 수도 베이징에서 보면 남동쪽의 상하이, 남서쪽의 홍콩을 중심으로 각각 창장(長江)과 주장을 끼고 두 마리의 거대한 용(龍)이 중국 경제를 끌고 가는 모습이 될 것 같다.

 홍콩의 매력과 기회

 자유(free) 발전(progress) 동력(dynamics) 동반(together) 기회(opportunity)로 상징되는 홍콩의 미래는 밝다. 홍콩의 반환 20주년을 맞으면서 떠오르는 중국의 위세에 홍콩이 중국화 되지 않았을까하는 우려는 기우로 끝났다. 730만의 인구를 가진 홍콩은 미국 헤리티지 재단에서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 순위에서 20년 이상 연속 1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다수 홍콩 주민이 바라고 있는 행정장관 직접투표 문제에 대해서도 캐리 람 장관은 인터뷰를 통해 행정장관 직접투표 추진을 매우 낙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30년의 시간이 있다. 중국의 발전과 함께 홍콩은 아시아의 보석으로 더욱 빛날 것으로 본다.
 홍콩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도 홍콩의 매력과 기회를 적극 활용하면 동반성장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특히 홍콩에서 환영받고 있는 한국의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음악 멀티미디아가 홍콩에서 꽃을 피우고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뻗어 나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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