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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과 '돈' 사이에 서 있는 국가대표

중앙일보

입력

"대표팀 엔트리도 다 채우지 못하고 대회에 나간다. 고생하는 선수들만 고생하게 된다."

여자배구 김연경 "대표팀, 고생하는 선수만 고생" #프로 종목 선수들, 최근 국가대표 사명감 옅어져 #FA 등록 일수 보상, 넉넉한 지원으로 혜택 줘야

[국가대표 여자배구/김연경]다음달 7일부터 한국과 불가리아, 폴란드 등에서 열리는 '2017 세계여자배구 그랑프리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 배구여제 김연경을 29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김성태/2017.06.29

[국가대표 여자배구/김연경]다음달 7일부터 한국과 불가리아, 폴란드 등에서 열리는 '2017 세계여자배구 그랑프리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 배구여제 김연경을 29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김성태/2017.06.29

'배구 여제' 김연경(중국 상하이)이 쓴소리를 날렸다. 김연경은 지난 7일 제19회 아시아 여자배구 선수권대회(9~17일)에 참가하러 가면서 대표팀 시스템에 대해 지적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엔트리 14명에서 1명이 적은 13명만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예비 엔트리에는 19명의 이름이 있었지만, 6명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결국 엔트리를 다 채우지 못했다.

이번 대회 전,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까지 뛴 터라 선수들은 현재 피로도가 높다. 그런데 일부 선수가 팀 훈련은 하면서 대표팀엔 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연경은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까지 20경기가 넘는데, 6~7명의 메인 선수만 계속 경기를 뛴다. 결국 고생하는 선수만 고생한다"고 하소연했다.

김연경, 양효진, 김희진 등 여자배구대표팀 선수들이 26일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월드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결선라운드 출전을 위해 체코 오스트라바 출국을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인천국제공항=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7.26/

김연경, 양효진, 김희진 등 여자배구대표팀 선수들이 26일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월드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결선라운드 출전을 위해 체코 오스트라바 출국을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인천국제공항=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7.26/

국가대표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스포츠 선수나 팀을 대상으로, 국가(國家)를 대표(代表)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특정 종목 스포츠 중 해당 나라의 국적을 가진,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모인다. 그래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그 종목에서 1인자로 인정받는 것으로, 대단한 영광으로 여겼다. 그런데 최근 국가대표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 특히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태극마크에 대한 절실함이 예전같지 않다.

2017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이스라엘-한국 개막전이 6일 서울 구로구 경인로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됐다. 이대호가 10회말 2사때 헛스윙 삼진으로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아쉬워 하고 있다.

2017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 이스라엘-한국 개막전이 6일 서울 구로구 경인로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됐다. 이대호가 10회말 2사때 헛스윙 삼진으로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아쉬워 하고 있다.

야구 대표팀은 지난 3월 국가대표로서의 사명감 부족 논란에 시달렸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4강), 2008 베이징 올림픽(금메달), 2009년 WBC(준우승) 등 국제 대회에서 승승장구했던 한국은 2013 WBC에 이어 올해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부상으로 인해 주요 선수들이 일부 빠지면서 준비가 부족했다. 또 경기를 지고 있는데도 더그아웃에서 웃는 선수들을 보고, 야구 팬들은 "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난 달 야구 대표팀 전임 감독이 된 선동열 감독도 "과거에 비해 선수들이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부족한 것 같다. 이런 분위기가 7~8년 전부터 생겨나면서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3위 우즈베키스탄에 승점 1점 차로 쫓기고 있다. 최종예선 2경기를 남기고 월드컵 본선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남일 대표팀 코치는 "선수들의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마음 같아서는 '빠따(야구 방망이)'라도 들고 싶지만…"이라고 말했다.

축구국가대표팀 기성용, 이청용, 이근호 등 선수들이 14일 2018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전에 2:3으로 패한 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조 승점 13으로 2위 자리를 지키며 12점 우즈베키스탄에게 1점차로 쫒기고 있다.인천국제공항=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6.14/

축구국가대표팀 기성용, 이청용, 이근호 등 선수들이 14일 2018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전에 2:3으로 패한 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조 승점 13으로 2위 자리를 지키며 12점 우즈베키스탄에게 1점차로 쫒기고 있다.인천국제공항=양광삼 기자yang.gwangsam@joins.com/2017.06.14/

농구도 그렇다. 지난 5월 남자 농구 아시아컵 예선대회를 앞두고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교체됐다. 이에 대해 허재 대표팀 감독은 "국가대표로서 사명감을 갖고 싶지 않은 선수는 부르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서 "한국농구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선수들로만 구성하고 싶다"고 작심발언을 했다.

유난히 프로화가 된 종목이 대표팀 구성을 할 때 사명감 논란이 불거진다. 결국 이 논란의 본질은 '돈'이다. 프로 스포츠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프로야구는 FA(자유계약) 150억원 시대가 열렸다. 프로농구, 프로배구, 프로축구도 FA제도 도입 후, 연봉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프로축구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이후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반면 대표팀에 차출되면 하루 일당은 고작 6만원이다. 30일 동안 꼬박 국가대표로서 훈련하고 대회에 나가도 180만원을 받는다. 억대 연봉의 프로 선수들에게 큰 돈은 아니다. 각 해당 연맹이나 협회에서 국가대표 수당을 주지만 역시나 많지 않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국가대표 년차에 따라 수당은 주는데 최대 50만원 정도다.

국가대표팀 훈련비 지원내역 [사진 대한체육회]

국가대표팀 훈련비 지원내역 [사진 대한체육회]

넉넉한 자금을 주는 후원 기업이 없는 연맹이나 협회는 대표팀 지원도 부족하다. 배구협회는 메인 스폰서가 없다. 대표팀의 비행기 이코노미석 논란은 열악한 재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악조건들로 인해서 선수들의 국가대표 사명감은 옅어졌다. 김연경은 "국가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엔트리와 같은 기본적인 지원조차 이뤄지지 않으면 솔직히 말해서 고생만 한다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김치찌개 회식을 한 여자배구 대표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김치찌개 회식을 한 여자배구 대표팀.

정희준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이제 국제대회는 축구 월드컵 정도가 아니면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크지 않은 편이다.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선수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조건, 금전적인 혜택이나 넉넉한 지원 등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프로야구는 대표팀 소집 기간 FA 등록 일수를 보상해 FA 자격을 좀 더 쉽게 얻도록 하고 있다. 남자 선수들은 아시안게임·올림픽 등의 국제대회에서는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프로야구처럼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FA 등록 일수를 보상해주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고 있다. 한국배구연맹과 각 구단과 논의해야 하는 일이라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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