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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부동산 대책 일주일 … 설익은 정책이 부른 현장의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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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애란 경제부 기자

한애란 경제부 기자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8일로 일주일째. 이날도 기자에겐 e-메일로 독자의 질문이 들어왔다. “2일 이전에 계약을 맺었으면 집값의 60%까지 대출이 나오는 거 맞나요? 은행 창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요.”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대출 규제 #돈줄 막힌 실수요자들 민원 빗발쳐 #가이드라인 내놨지만 허점만 노출

대출한도가 집값의 40%냐, 60%냐. 당사자에겐 손해를 보더라도 계약을 포기하느냐 마느냐가 달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답을 해주려니 쉽지 않다. 무주택자인지, 1주택자인지, 다주택자인지, 분양권 보유자인지, 투기지역인지 아닌지, 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한두개가 아니어서다. 일반 주담대가 아닌 이주비·중도금대출이면 더 복잡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창구에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보수적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과 공인중개사, 집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누구도 모른다. 이번 8·2 부동산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정책 수요자들은 각자의 사례에 맞는 답변을 구하려고 하지만 좀처럼 책임 있는 대답을 듣기가 어렵다. 답답한 이들은 금융당국과 국토부에 전화하지만 거의 연결이 되지 않고, 결국 청와대 국민신문고까지 두드린다. 2일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을 땐 이런 혼란까진 예상 못 했다. 강화된 대출 규제의 적용 시점이 “감독규정 개정안이 시행되는 2주 뒤부터”라고 금융위원회가 밝혔기 때문이다. 이미 집 매매 계약을 맺었어도 2주 안에 미리 대출을 받아놓으면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3일 기획재정부가 투기지역을 지정하는 순간 해당 지역엔 대출규제가 살아났다. 유예기간이 아예 없었다. 실수요자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금융당국은 7일 이미 계약을 체결한 무주택자는 예외를 인정하는 가이드라인이 담긴 3쪽짜리 자료를 부랴부랴 내놨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예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계약자들의 항의가 여전하다. 금융당국 관계자조차 “궁금증을 해소해주려고 했더니 오히려 질문이 빗발친다”며 추가 지침을 주겠다고 밝혔다. 보완책의 보완책이 또 필요한 셈이다. 은행에선 “금융당국이 집단대출의 구조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며 “은행과 사전 협의나 교감 없이 정책을 발표하다보니 허점이 너무 많다”며 답답해한다.

애초에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지정까지 한달 정도 시간을 뒀으면 어땠을까. 2002년 투기과열지구, 2003년 투기지역 첫 지정 때는 한두달 전에 미리 예고가 나왔다. 이번처럼 군사작전 하듯이 하루 전에 발표한 적은 없었다. 시장에 준비할 시간을 좀더 줄 수 있었는데도 정부는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집값 상승의 주범인 다주택자를 일종의 적으로 취급했기 때문이 아닐까. 속도를 낸 만큼 빈틈 많고 설익은 정책이 나왔다.

더 아쉬운 점은 대책 발표 이후 소통 부족이다. 금융당국은 대책 발표 당일 오후에 시중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대출쏠림 리스크를 관리하라”고 당부했다. 돌이켜보면 보여주기식의 은행장 간담회 대신 은행 실무진과 모여 대책 시행 방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어야 했다. 아니면 구체적인 사례별 대출규제 적용 여부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그때부터라도 만들었어야 했다. 이렇게 설익은 대책을 던져주고 시장에서 알아서 소화시키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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