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과서 없어도 선행학습”…학원가, 중3 통합과학 사교육 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서울 잠실에 사는 전업맘 박모(47)씨는 2주 전 여름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중학교 3학년인 딸을 대치동 한 학원의 ‘통합과학’ 수업에 보내고 있다. 통합과학은 문·이과 통합교육을 위해 내년 고 1에 신설되는 필수 과목이다. 박씨는 “학원이 주최하는 입시 설명회에 갔더니 ‘앞으로는 통합과학이 국어·영어·수학만큼이나 중요해진다’고 하더라. 특히 우리 딸처럼 과학을 어려워하는 학생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내년 고1부터 통합과학·통합사회 과목 신설 #학원들 “국영수만큼 중요해진다” 수강 부추겨 #현 중 3 보는 2021학년도 수능안 확정도 안 돼 #교사들 “선행학습보다 중학교 복습이 도움돼”

박씨 딸은 주 2회, 매 회 3시간씩 5주 과정의 특강을 등록했다. 교재는 시중에 출판된 문제집을 짜깁기한 학원 프린트물을 쓴다. 통합과학은 내년 초 처음 도입되는 과목이라 아직 교과서가 나오지 않았다. 박씨는 “조금이라도 수업을 들어두면 도움될 거라는 생각에 다른 엄마들도 통합과학 강의에 관심 있어 한다”고 말했다.

대치동 한 학원의 블로그에 올라온 통합과학 특강 홍보 이미지. 

대치동 한 학원의 블로그에 올라온 통합과학 특강 홍보 이미지. 

여름방학을 맞은 학원가에서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합과학 수업을 하고 있다. 아직 교과서가 나오지도 않았고 대입 수능 개편안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학원들은 “통합과학 내신을 잘 받아야 대입에 유리하다” “수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내년 고교 신입생부터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이라 불리는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통합과학·통합사회 과목을 배우게 된다. 문과반·이과반 사이의 벽을 낮춰 문과생도 과학 전반을, 이과생도 사회를 배우게 하자는 취지다. 통합과학·통합사회를 국·영·수와 동일하게 각각 한 학기 4단위(주당 4시간)를 배우게 된다. 통합과학의 경우 종전처럼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을 따로 배우지 않고 주제 중심으로 융합교육을 한다. 예컨대 ‘규칙성과 시스템’란 주제를 제시하고 중력의 법칙(물리), 대기의 순환(지구과학)을 함께 배우는 식이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 학원들은 여름 방학을 맞은 중3을 대상으로 관련 특강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과학을 어려워하는 학생이 주 타깃이다. 중3 아들을 둔 이모(48∙역삼동)씨는 “방학 직전부터 학원 대여섯 곳으로부터 ‘통합과학이 국·영·수만큼 중요해진다’ ‘융합적 지식 요구하기 때문에 내용이 어렵다’는 내용의 홍보 문자를 많을 때는 하루 30통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문자를 받다 보니 ‘혹 내 아이도 보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라”고 했다.

박상균 대치진로진학연구소장은 “대치동에 평균 규모의 학원들은 대부분 관련 특강을 개설했다”고 전했다. 박 소장은 “통합과학∙통합사회가 내신에서 비중이 커진 것뿐 아니라 수능에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학원가에서는 향후 국·영·수만큼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대치동 한 학원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통합과학 특강 홍보 이미지. 이 학원은 '통합과학이 수능 필수 과목'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현 중3이 응시하는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아직 발표되지도 않았다. 

대치동 한 학원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통합과학 특강 홍보 이미지. 이 학원은 '통합과학이 수능 필수 과목'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현 중3이 응시하는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아직 발표되지도 않았다. 

현재 대치동 학원가의 통합과학 수업은 5~6주 코스의 방학 특강이다. 비용은 50만~70만원을 받는다. 학원별로 적게는 20명, 많게는 150명을 모집했다. 대치동 A학원 원장은 “이번 방학엔 100여 명이 통합과학을 수강한다. 고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엔 1000명까지 늘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과학 교과서는 다음달 초 심의가 끝난 뒤에야 공개된다. 하지만 학원들은 강의에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중학생 대상의 B학원 원장은 “시중에 나온 통합과학 문제집, 참고서를 토대로 학원 교재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교과서가 공개되면 교재를 업그레이드 해 겨울방학 특강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원들은 과학 강사 충원에 몰두하고 있다. 기존 교육과정에서 통합과학과 유사했던 공통과학·융합과학 강의 경력이 있는 강사들이 인기다. C학원 원장은 “그 동안 수강생이 많지 않았던 물리 강사들이 통합과학 강사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출판사들도 시장 선점을 위해 뛰어들었다. 현재까지 5종의 통합과학 문제집과 참고서가 출판됐다. 출판사 관계자는 “통합과학 교과서의 집필에 참가한 집필진을 중심으로 미리 문제집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무리한 선행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현식 서울 동북고 교사(물리)는 “아직 무엇을 배울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인데 선행 학습을 하면 지식 암기 등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사는 “통합과학은 실험·발표·토론 등 학생 참여 활동 위주로 한다는 취지인 만큼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리 대비한다면 어설픈 선행학습 대신 중학교 과학을 충분히 복습하고 기초를 탄탄히 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