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증강현실, 가상현실로 펼친 새로운 공간적 체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증강현실, 가상현실이 미술창작과 만났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공간적 체험을 안겨주는 국내 두 작가의 작품이 서울에서 각각 전시중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배경 작가의 증강현실 작품은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공간&시간, 상념'(8월 20일까지)에서, 권하윤 작가의 가상현실 작품은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기획전 '불확정성의 원리'(10월 20일까지)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을 통해 관람객이 신기술은 직접 체험하는 재미있는 기회다. 두 작품은 신기술에 대한 서로 다른 조금 다른 접근이란 점에서도 흥미롭다.

최신 기술 각각 활용한 현대미술 신작 전시 #이배용 작가, 서울 아트사이드 갤러리 개인전에 #권하윤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에 선보여

권하윤 작가의 '새[鳥] 여인', 2017, 가상현실 설치, 가변크기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권하윤 작가의 '새[鳥] 여인', 2017, 가상현실 설치, 가변크기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 중 권하윤 작가의 가상현실 작품 '새[鳥] 여인’은 화려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관람객이 헤드셋을 쓰면 눈앞에 유럽풍 저택이 등장한다. 그 계단을 올라 큼직한 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방을 둘러보면 형형색색의 새들이 새장 안팎에 앉아 있거나 멋지게 날아오르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작가는 현지 그림 선생님이 들려준 젊은 시절의 체험에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 16세기 건물들을 찾아가 수치를 측정해 설계도를 그리는 일을 하다 온갖 새를 수집한 저택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 모습에 매료돼 그만 본래의 목적도 잊었다는 체험이다.
 작가는 이처럼 제3자의 기억에 담긴 매혹을 관람객이 체감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이 지닌 때로는 꿈같고 때로는 현실같은 특징을 한껏 활용한다. 작품의 전개 정도는 관람객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데 후반부에는 수치 측정을 잊어 마음대로 그린 설계도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를 선보이는 '불확정성의 원리'는 국내외 작가 4명을 초청,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픽션과 현실, 기억과 사실의 경계를 조명하는 기획전이다. 신기술을 활용한 건 아니지만 홍콩 스타 양조위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작품 '더 네임리스'도 흥미롭다. 싱가포르 출신 작가 호 추 니엔은 양조위가 출연한 숱한 영화 장면을 모으고 새로운 자막을 입혀 삼중스파이로 활약한 실존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싱가포르 출신 작가 호 추 니엔의 영상 작품 '더 네임리스' 가운데 한 장면. 사진=이후남 기자

싱가포르 출신 작가 호 추 니엔의 영상 작품 '더 네임리스' 가운데 한 장면. 사진=이후남 기자

 권하윤 작가의 가상현실 작품과 달리 이배경 작가의 증강현실 작품 'Zero gravity space(제로 그래비티 스페이스, 무중력 공간)’는 색채도, 형태도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을 맨 눈으로 보면 흰 벽에 검은 선으로 그려진 육면체들이 들어온다. 전시장에서 제공하는 스마트폰을 들고 보면 또 다른 육면체들의 입체적 형상이 무중력 상태처럼 떠다니는 모습이 더해져 같은 장소에서 다른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이배경 작가의 'Zero gravity space'.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을 맨 눈으로 본 모습이다.사진=이후남 기자

이배경 작가의 'Zero gravity space'.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을 맨 눈으로 본 모습이다.사진=이후남 기자

이배경 작가의 'Zero gravity space'. 증강현실 스마트폰을 통해 본 모습이다. 사진=이후남 기자

이배경 작가의 'Zero gravity space'. 증강현실 스마트폰을 통해 본 모습이다. 사진=이후남 기자

 단순한 육면체로, 스스로의 표현을 빌면 "중성적 이미지"로 작품을 구성한 의도를 작가는 익숙한 기술인 TV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처음 TV를 본 사람은 드라마나 뉴스 같은 콘텐트가 아니라 "TV 안에 사람이 움직이는 자체"를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다. 신기술이 지닌 신기함이 작품을 가릴 수 있다는 경계심은 지난 10여년 동안 다양한 기법·기술로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해온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신기술을 작품에 활용하는 방식을 "(기술이)원래 만들어진 사용목적과 다른 사용목적으로 (작품에)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달리 말하면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신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이 탐색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번 개인전에는 또 다른 작품 '공간-Zero gravity space’ 도 선보인다. 증강현실 대신 3D애니메이션만으로 전시장 모습이 수백배로 확장된 듯한 시각적 체험을 부르는 작품이다. 그 안에 부유하는 입체 육면체가 실제 공간과 작품 속 공간의 경계를 느끼게 한다.

이배경 작가의 '공간-Zero gravity space' 가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아트사이드 갤러리

이배경 작가의 '공간-Zero gravity space' 가 설치된 전시장 모습. 사진=아트사이드 갤러리

 가상현실, 증강현실은 세계 각지의 미술관, 박물관에서 기존 작품을 새롭게 선보이는데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증강현실을 통해 작품에 대한 부가정보를 보여주는가 하면 가상현실을 통해 작품 속 세계에 직접 들어간 듯한 체험을 안겨주기도 한다. 미국 플로리다주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이 지난해초부터 선보인 가상현실 전시가 한 예다. 달리의 1935년 작품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 속 세계를 관람객이 헤드셋을 쓰고 누빌 수 있게 해서 큰 화제가 됐다. 이런 체험이 주는 느낌은 미술관이 온라인에 공개한 360도 동영상 ‘달리의 꿈(Dreams of Dalí: 360º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F1eLeIocAcU)’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