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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제자 사랑' 릴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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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밤새워 실험하는 학생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지난달 한국과학상을 받은 포스텍(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남홍길 교수는 16일 상금 2000만원을 학교 측에 기부하며 "학생 전용 휴게실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과학상은 해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최고의 연구 성과를 보인 학자에게 주어진다. 남 교수는 식물이 빛의 양을 조절하는 유전자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낸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그는 "나 혼자 이룩한 연구 성과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래서 총 상금 5000만원 중 3000만원은 아파트 전세값 인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가족에게, 나머지는 학생에게 돌린 것이다.

물리학 분야 한국과학상을 받은 이 대학 물리학과 이성익 교수도 상금 중 1000만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이 교수 역시 "학생들을 위해 상금을 환원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나머지 상금 대부분도 제자들의 장학금, 학회 및 출신 대학 기부금 등으로 내놨다.

이 학교에서 교수들이 학문적 성취의 대가로 받은 상금을 학교 측에 기탁한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지난 3개월 동안 모두 6명의 교수들이 7000만원을 기탁했다.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 릴레이'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릴레이의 시작은 지난해 10월 대한민국기술대상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받은 신소재 공학과 이종람 교수였다. 그는 획기적인 발광다이오드를 개발해 수상했다. 그런 뒤 상금(200만원)에다 개인 돈을 보태 1000만원을 학교에 전달했다. 이 교수는 "학생과 학교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뒤를 이어 생명과학과 황인환 교수(일맥문화대상 과학기술상 수상)가 상금 1000만원을 학교에 쾌척했다. 지난해 말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받은 수학과 최영주 교수와 12월의 과학기술자상을 받은 전자전기공학과 임기홍 교수도 장학기금으로 각각 1000만원을 내놨다.

최 교수는 "여성과학기술자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며 "뛰어난 여성 수학자가 배출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포스텍은 지난해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연간 학생 1인당 장학금 규모가 188만8400원으로 국내 대학 중 1위를 차지했다. 서울대(55만8000원)의 세 배가 넘는다. 장학금 형편이 타 대학에 비해 훨씬 좋지만 교수들의 기부 행렬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분자생물과 김유미(27.석박사통합 7학기)씨는 "기탁금을 내신 교수님들은 평소 제자들을 각별하게 여기셨던 분들"이라고 했다. 물리학과 이대엽(25.석사3학기)씨도 "그 분들은 연구실 학생들을 자식처럼 챙겨주신다"고 말했다.

포스텍 기획처 오창선씨는 "교수 당 학생 수 비율(1대 1.5)이 타 대학에 비해 낮아 스승과 제자 간 유대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교수들의 자발적인 기부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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