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사일만 쏘면…재연된 3(한ㆍ미ㆍ일) 대 2(중ㆍ러) 대 1(북한) 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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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북한의 심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한 정부가 취한 첫 외교적 조치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마스터 미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간의 ‘새벽 통화’였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정 실장은 통화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조기 배치, 전략적 자산의 조기 전개 등 대응방안을 협의했다”고 전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바쁘게 움직였다. 28일 오전 10시쯤부터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 잇따라 통화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공조 방안을 협의했다. 강 장관은 오후에는 긴급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 소집을 포함,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가 도출되도록 협의하고 우방국 차원에서 추가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면밀히 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일 공조라는 틀에서 대북 독자제재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화성-14형 발사 이후 이처럼 한·미·일은 밀착 안보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중국·러시아와의 의견 차도 두드러진다. 지난 4일 북한이 처음 ICBM급 도발을 했을 때와 비슷한 ‘3(한·미·일) 대 2(중·러) 대 1(북한)’ 구도가 형성되는 모양새다.

틸러슨 장관은 28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내면서 아예 중국과 러시아에 화살을 돌렸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있어 주된 경제적 조력자인(economic enabler)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위협 증가에 대한 특별하고도 남다른 책임이 있다”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중국에 굉장히 실망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말 뿐이다”라고 올렸다. 북한과 러시아, 이란을 동시에 제재하는 패키지 법안은 미 의회를 통과해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다.

중국은 북한 미사일보다 사드 완전 배치에 더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중국 외교부는 29일 대변인과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두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반대한다”고 했는데,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더 강한 표현을 썼다.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장은 “북한의 핵·미사일은 지속되던 위협이지만, 사드의 완전한 배치는 전략적인 구도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에 더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아예 화성-14형이 ICBM급이란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4일과 마찬가지로 28일 발사 역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라고 1차 결론을 내렸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도출에도 이런 대립구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의 협의를 토대로 마련한 초안을 몇 주 전 중국에 전달했다. 중국은 초안을 갖고 다시 러시아와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미·중 및 미·러 간 갈등이 깊어지면 우리의 입지도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이 “동북아 안보 구도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데도 이런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가장 큰 도전은 “문 대통령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는 탈 생각이 없다”는 김정은식 ‘마이웨이’ 행보다. 북한이 화성-14형을 발사한 시각은 28일 밤 11시41분. 한국 시간으로는 심야지만, 워싱턴 시간은 28일 오전 10시41분이었다. 발사 성공을 공표하는 조선중앙통신 보도도 미 본토 전역이 사정권이라는 부분만 강조할 뿐, 한국에 대한 언급은 사실상 없었다.

이처럼 북한이 정부의 대북 제안은 거부한 채 미국을 염두에 둔 도발에만 몰두하는 상황에선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도 동력을 얻기 힘들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대화와 협상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려 하면 북한이 계속 문을 닫는 형국”이라며 “한·미·일 협력을 바탕으로 중국, 러시아와도 양자적으로 북핵 공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중이든, 미·중·일이든 소다자주의를 활성화해 계속 북핵 협의가 이뤄지는 장이 이어지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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