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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 그렌펠 화재에 '공공기관 과실치사' 적용할 듯

중앙일보

입력

최소 80명이 숨진 런던의 24층 임대아파트 화재를 수사 중인 영국 경찰이 건물을 소유했던 구청 측과 관리했던 임대관리업체에 대해 ‘공공기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시사했다.

주민들에 보낸 서신에서 "과실치사 합당한 근거 있다" #2007년 안전 소홀한 기업과 정부기관에 책임 묻는 법 제정 #일부 주민들은 "책임있는 개인도 동시에 기소해야" 요구 #그렌펠 타워 다음달 덮개 씌운 뒤 내년말까지 철거키로

27일(현지시간) BBC 등의 보도에 따르면 런던경찰청은 불이 난 그렌펠 타워 주민들에게 수사 상황이 담긴 서신을 보냈다. 서신에서 경찰청은 해당 아파트를 소유한 켄싱턴ㆍ첼시 왕립 자치구와 건물 관리를 맡았던 켄싱턴ㆍ첼시임대관리협회(KCTMA)에 대해 기업 및 정부기관의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화재가 난 24층 런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AFP]

화재가 난 24층 런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AFP]

경찰은 이런 혐의를 확정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구청 고위 관료들과 관리업체 관계자 등에게 이런 혐의에 대한 책임을 조사할 것임을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측은 주민들에게 “이미 많은 양의 자료를 확보했다”고도 전했다.
영국은 산업 현장에서 근로자 등이 노동 환경이나 공중 안전조치가 미흡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과 정부기관에 범죄에 대한 과실치사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을 2007년 제정했다. 이 혐의가 인정되면 상한선 없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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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구청 측과 관리업체는 화재 방지와 안전 조치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입주자협회 측이 수년 전부터 건물에 하나뿐인 계단 통로에 짐들이 쌓여 있어 화재 발생 시 고층에서 대피하지 못해 피해가 클 수 있다고 호소했으나 묵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화재가 날 경우 집 안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다는 안내문을 배포해 실제 이번 화재 발생 시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만 탈출하는 아이러니를 초래하기도 했다.

구청 측은 해당 건물을 2년 간 리모델링하면서 가연성 충전재가 포함된 외장재를 사용해 4층에서 난 불길이 순식간에 번치는 굴뚝 역할을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임대아파트 화재가 해당 건물을 소유한 구청과 관리업체의 부실한 안전 관리 때문으로 밝혀진데다 테리사 메이 총리도 늑장 대응을 하다 성난 시위대의 반발을 낳았다. [AFP=연합뉴스] 

임대아파트 화재가 해당 건물을 소유한 구청과 관리업체의 부실한 안전 관리 때문으로 밝혀진데다 테리사 메이 총리도 늑장 대응을 하다 성난 시위대의 반발을 낳았다. [AFP=연합뉴스] 

경찰이 공공기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더 강한 처벌이 병행되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화재로 친구를 잃은 노동당 데이비드 레미 하원의원은 “공공기관 과실치사에 대한 처벌로 벌금만 물리는 것은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정의가 아니다"며 “중대한 과실치사는 징역형에 처해지는 만큼 경찰이 (관계자들에게) 이 혐의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BBC에 말했다.

그렌펠 희생자 지원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베트 윌리암스는 “공공기관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와 함께 우리는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도 기소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화재가 난 건물은 8월 중 덮개가 씌워진 뒤 내년 말까지 철거될 예정이라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달 14일 화재가 발생한 그렌펠 타워는 영국 내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구에 속한 임대아파트로, 이민자들과 연금으로 생활하는 고령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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