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스라엘, 하마스 퇴출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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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패한 파타당 산하 단체인 '흑표범'의 대원들이 14일 요르단강 서안 도시 나블루스 중심가에서 당의 개혁과 부패 퇴치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나블루스 AFP=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이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무장세력 하마스에 대해 강도높은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집권하면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미국.이스라엘.파타당이 손잡고 하마스를 고립.약화시킨 뒤 총선을 재실시함으로써 정치권에서 퇴출하려고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강경 대응은 자칫 무장봉기 등 반발을 불러 중동평화 실현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대행은 14일 하마스가 주도할 내각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올메르트는 "차기 정부의 전체는 물론 일부라도 테러단체(하마스)가 장악할 경우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을 일절 중단할 것"이라며 "하마스 대표가 새 내각을 이끄는 그날부터 기존의 대 팔레스타인 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팔레스타인 정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하마스는 협상 파트너로 인정조차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13일 미 뉴욕타임스는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이 하마스를 밀어내려고 총선을 재실시하는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국제사회 고립→자금공급 중단→내부 혼란 야기→총선 재실시→파타당 재집권'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시나리오에 따르면 그 다음 단계에서 이스라엘은 매달 5000만~5500만 달러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측에 대한 각종 세수 이체를 중단하고, 서구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를 크게 줄이게 된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완전히 차단하고 사람 이동을 제한, 주민들의 불만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신문은 "이 같은 조치로 혼란이 발생할 경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새로운 선거를 요구해 파타당을 재집권시키려 할 것이라고 미.이스라엘은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은 하마스와의 접촉을 중단하도록 유럽연합(EU) 등을 설득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선 하마스 대표단을 모스크바로 초청한 러시아만이 공식적으로 유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15일 "민주적 선거로 집권한 정통세력(하마스)에 미국.이스라엘.파타당이 도전장을 낸 셈"이라고 지적하고 "미국의 '대 중동 민주화 구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문은 "하마스를 시리아.이란 등 과격국가들과 더 유착시키고 이스라엘에 대한 본격적인 무장 봉기를 유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파타당은 앞으로 하마스가 장악하게 된 의회에 맞설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파타당이 주도했던 전임 팔레스타인 자치의회는 회기 마지막 날인 13일 자치정부 수반에게 헌법재판소 판사 임명권과 방송 통제권을 부여했다. 파타당 지도자이자 현 수반인 마무드 압바스의 권력을 강화시켜 주는 결정이다. 하마스는 이를 '무혈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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