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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풀어주는 데만 집중한 결과" 그렌펠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불길에 휩싸인 24층 런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AFP=연합뉴스]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불길에 휩싸인 24층 런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AFP=연합뉴스]

1999년 영국 스코틀랜드 어바인 자치구의 가노크 코트라는 14층 건물에서 불이 나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3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단 5분 만에 건물 전체로 번진 원인으로 건물 마감재(클래딩)이 지목됐다. 이후 스코틀랜드에선 빌딩 클래딩으로 불연성 소재 혹은 실제 화재 상황에 준하는 안전 테스트를 거친 제품만 허용되고 있다. 또한 고층 빌딩은 정기적으로 당국의 방재 점검과 안전 진단을 받아야 한다.

99년 화재 이후 스코틀랜드는 규정 강화 #런던에선 2009년 화재에도 안전책 미비 #한국, 2015년 이전 건물 외장재 규정 없어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잉글랜드에서도 99년 화재 이후 안전 규정을 강화하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2009년 런던 남부 라카날하우스 화재 이후 경고음은 더욱 강해졌다. 당시 화재 때도 불과 4분 만에 불길이 위층으로 번져 6명이 숨졌고 주원인으로 가연성 마감재가 지목됐다. 의회에서 노후 빌딩에 화재 진압 시스템과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보수당이 집권하든 노동당이 집권하든 “관료적 규제를 풀어주는 데 집중한 듯 보였다”는 게 파이낸셜타임스(FT)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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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알루미늄판 내부를 폴리틸렌으로만 채운 외장재는 미국에선 20년 전부터 일정한 높이 이상의 건물에 사용이 금지됐다. NYT는 그렌펠 화재가 본질적으로 “(영국) 정부 감독의 총체적 실패, 내외부의 경고 무시, 기업들을 안전성 규제로부터 해방해 주려는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2014년 미국의 화재방지연구재단(FPRF)이 외장재 관련 세계 주요 고층건물의 화재 사건에 대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두바이, 한국(2010년 부산 해운대 38층짜리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미국 등 최소 6건에서 그렌펠 타워와 같은 외장재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2015년 관련 법령을 개정해 6층 이상 모든 건축물의 외장재 사용시 준불연재료 이상의 성능을 갖추도록 의무화했지만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 외장재에 대해선 별도 규정이 없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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