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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씩 모아 그는 어떻게 볼리비아 오지에 학교를 지어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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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가 한영준(32)씨가 2015년 10월 볼리비아 뽀꼬뽀꼬 마을에 문을 연 '희망꽃학교' 개교식 모습. 한씨(왼쪽 두 번째)와 아내 김경미(33)씨, 현지 주민들이 기념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사진 희망꽃학교]

공정여행가 한영준(32)씨가 2015년 10월 볼리비아 뽀꼬뽀꼬 마을에 문을 연 '희망꽃학교' 개교식 모습. 한씨(왼쪽 두 번째)와 아내 김경미(33)씨, 현지 주민들이 기념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사진 희망꽃학교]

중남미 최빈국에 속하는 볼리비아에는 뽀꼬뽀꼬(Pocopoco) 마을이 있다. 볼리비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로 알려진 곳이다. 하루에 버스 한 대가 다니는 산골 오지다. 전기와 수도가 안 깔린 집이 수두룩하다.

공정여행가 한영준씨의 이색 공헌 스토리 #최빈국서도 가장 가난한 뽀꼬뽀꼬 마을에 #1억원 모아 2015년 '희망꽃학교' 문 열어 #현지 학생들에 무상급식과 양질교육 제공 #"가난한 나라에 태어난 이유만으로 #아프고 교육 못받는 현실 불공평" #병원 짓는 NGO 만들려 6월 입국

이곳에 사는 주민 500여 명은 포도와 감자·옥수수 등 농사를 짓는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밥을 굶기 일쑤다. 아이 대부분이 영양 결핍에 걸린 이유다. 학교 교육도 부실한 건 비슷하다.

한영준씨가 볼리비아 현지 아이가 주는 과자를 받아 먹고 있다. [사진 희망꽃학교]

한영준씨가 볼리비아 현지 아이가 주는 과자를 받아 먹고 있다. [사진 희망꽃학교]

이 마을에는 졸업장을 주는 정규 학교는 아니지만 누구나 매일 점심을 공짜로 먹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가 있다. 2015년 10월 문을 연 '희망꽃학교'다.

공정여행가 한영준(32)씨가 후원금 1억원을 모아 마을 원주민이 기증한 땅(330㎡)에 2층짜리 학교를 지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질병에 시달리고 교육을 못 받는 현실은 불공평하다"며 2013년 4월 첫 삽을 떴다. 이 학교 초대 교장을 지낸 한씨가 이사장이다.

한영준씨가 '희망꽃학교'에 다니는 현지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희망꽃학교]

한영준씨가 '희망꽃학교'에 다니는 현지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희망꽃학교]

희망꽃학교에는 현지 유치원·초·중·고교 학생 70여 명이 다닌다. 현지인 교사 3명과 영양사 2명이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을 책임진다. 이들은 볼리비아 최저 임금(35만원)의 2배 수준인 50만~7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한씨는 "어렵고 좋은 일을 하는 만큼 임금이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꽃학교는 뽀꼬뽀꼬 마을뿐 아니라 인근 25개 마을에 사는 학생 1100여 명에게도 학용품과 생필품·기초약품 등을 나눠주고 있다. 마을마다 찾아 다니며 아이들에게 위생교육과 성교육도 한다. 주민들에게는 옷과 쌀을 지원한다. 그동안 도서관 3개를 더 세웠다.

한영준씨가 볼리비아 트로하빰빠(Trojapampa) 마을에 지은 도서관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도서관은 지난해 3월 완공됐다. [사진 희망꽃학교]

한영준씨가 볼리비아 트로하빰빠(Trojapampa) 마을에 지은 도서관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다. 도서관은 지난해 3월 완공됐다. [사진 희망꽃학교]

희망꽃학교가 이런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들어간 돈은 3억원가량이라고 한다. 전북대 철학과 4학년 휴학생 신분인 한씨가 이렇게 큰돈을 모은 비결은 뭘까.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밥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 전략이다.

기업으로부터는 후원을 안 받고 개인 후원도 매달 최대 1만원만 받는 게 원칙이다. 하루 100원씩 월 3000원을 내는 후원자가 대부분이다. 모금을 처음 시작한 2011년 17명이던 정기 후원자가 6년 만에 2300여 명으로 늘었다.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그는 이날 전북대 등에서 2시간30분 동안 120여 명과 포옹하고 즉석에서 7만원가량을 모금했다. [사진 희망꽃학교]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그는 이날 전북대 등에서 2시간30분 동안 120여 명과 포옹하고 즉석에서 7만원가량을 모금했다. [사진 희망꽃학교]

한씨는 "후원금을 한꺼번에 받으면 좋지만 그러면 간섭이 심해진다"며 "사회적 빈민도 최대 후원자가 될 수 있고 작은 나눔이 확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철학은 그가 2009년부터 공정여행(fair travel)으로 인도와 스리랑카 등 세계 35개국을 누비면서 자연스레 생겼다.

공정여행은 내가 쓰는 돈이 현지인에게 이익으로 돌아가는 여행이다. 외지인이 운영하는 리조트 대신 현지인 집에 묵으며 아낀 숙박비로 배고픈 현지 아이들에게 음식을 사주는 식이다. 한씨는 "희망꽃학교를 설립한 것도 공정여행의 범주를 넓힌 것"이라고 했다.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사진 희망꽃학교]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사진 희망꽃학교]

그는 지난 6월 말 아내이자 매니저인 김경미(33)씨와 잠시 입국했다. 나라는 정하지 않았지만 개발도상국에 병원을 짓는 비영리기구(NGO)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정부가 의료 혜택을 못 주는 나라에 소아과나 치과·산부인과를 기반으로 한 병원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모금액 목표는 100억원이다. 그는 "개인 후원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하루에 100원씩 모아주는 정기 후원자 4만 명만 있으면 된다"는 계산에서다.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그는 이날 전북대 등에서 2시간30분 동안 120여 명과 포옹하고 즉석에서 7만원가량을 모금했다. [사진 희망꽃학교]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그는 이날 전북대 등에서 2시간30분 동안 120여 명과 포옹하고 즉석에서 7만원가량을 모금했다. [사진 희망꽃학교]

한씨는 한국에 와서도 바쁘다. 학교와 기업·교회 등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해서다. 주로 강연 주제는 '꿈은 던지고 잡는 것'이다. 강연을 하면서 후원자를 모집하고 길거리에서 '프리허그'를 하며 기부금을 모은다.

이 돈을 어떻게, 어디에 쓰는지는 그의 페이스북과 정기 메일을 통해 공개한다. 이를 본 사람들이 다시 한씨의 후원자가 된다. 그는 "세상에서 기아를 없애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했다.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사진 희망꽃학교]

한영준씨가 지난 6월 28일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모습. [사진 희망꽃학교]

매사에 낙천적인 한씨에게도 스트레스가 있다. '봉사자는 가난해야 한다'는 편견이다. "한국에서는 봉사자에게 헌신을 강요해요. 제가 사진작가인데도 카메라가 비싸면 안 되고 아이폰을 쓰면 안 된다는 프레임이죠. 이러면 후배들이 NGO의 길을 가려고 할까요? 자신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나눠줄 수 있어요."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희망꽃학교' 포스터. [사진 희망꽃학교]

'희망꽃학교' 포스터. [사진 희망꽃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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