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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서<酷暑>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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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29면

漢字, 세상을 말하다

올해 여름 더위가 심하다. 혹서(酷暑)라는 말이 떠오른다. 지독한 더위를 보이는 여름이라는 뜻이다. 앞의 酷(혹)은 과거의 제례(祭禮)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술을 가리키는 酉(유) 부수에 제사 지낼 때의 동작을 지칭하는 告(고)가 합쳐졌다. 따라서 ‘제사에 올리는 술’이라는 의미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제사에 올리는 술은 순도(純度)가 높다. 알코올 함량도 따라서 높았을 것이다. 그로써 번진 새김이 ‘높다’ ‘독하다’ ‘대단하다’일 테다. 더워서 견디기 힘든 여름을 혹서(酷暑)라고 적는 이유다. 혹염(酷炎)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맥락의 단어다.

暑(서)는 해를 가리키는 日(일) 밑에 者(자)를 붙인 모양새다. 그러나 뒤의 者(자)를 煮(자)로 푸는 경우가 있다. 물을 끓여 무엇인가를 익히거나 삶는 일이다. 땡볕에 물을 끓이는 상황이면 그냥 더운 정도는 아니다. 그로부터 심한 더위, 또는 그런 계절인 여름을 가리키는 글자로 발전했다고 보인다.

무더운 여름을 가리키는 단어는 제법 풍부하다. 성서(盛暑)와 융서(隆暑)는 혹서(酷暑)와 거의 동렬에 있는 표현이다. 습기가 겹쳐 더위가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여름을 일컫는 단어들이다.

직접 계절을 가리키는 夏(하)도 빼놓을 수 없다. 성하(盛夏), 염하(炎夏)는 우리도 자주 입에 올리는 여름의 별칭이다. 뜨거운 태양을 표현하기 위해 주하(朱夏)로 적기도 한다. 더위를 더 두드러지게 표현하면 주화(朱火)다. 계절을 가리키는 서(序)를 더해 화서(火序), 염서(炎序)로도 일컫는다.

더위가 아주 지나치면 여러 면에서 좋지 않다. 극도로 치달을 정도로 무엇인가가 도를 넘어 마구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위를 물리는 차가운 기운은 마침내 다가온다. 한래서왕(寒來暑往)이라는 성어 표현은 그래서 등장한다. 계절의 추이, 시간의 흐름, 그로부터 느껴지는 덧없음을 다 품고 있는 말이다. 여름을 그래서 짜증으로만 대할 일이 아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 여름 또한 그리움이란 단어로 돌아볼지 모른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ykj33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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