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 군사회담 불발 … 첫 스텝부터 꼬인 ‘베를린 구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문재인 정부의 첫 남북 대화가 불발됐다. 21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열자는 우리의 제안을 북한이 사실상 거부했다. 문 대통령의 ‘7·6 베를린 구상’은 첫 스텝인 남북 군사당국 회담에서부터 꼬였다.

국방부 “27일까지는 제안 유효” #북한에 조속한 호응 다시 촉구 #일각 “물밑 접촉 없이 날짜 못박아 #북측서 선뜻 수용 쉽지 않았을 것”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 회담 제안 관련 국방부 입장’에서 “북측은 현재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오늘(21일) 회담이 열리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군사 분야에서 대화채널을 복원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매우 시급한 과제”라며 “국방부는 북측이 조속히 우리의 제안에 호응해 나오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17일 군사분계선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21일 개최하자고 발표했다. 같은 날 김선향 대한적십자사 회장 직무대행은 “추석(10월 4일)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위한 남북 적십자 회담을 다음달 1일 판문점 우리 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가질 것을 제의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7·6 베를린 구상’ 후속 조치로 ‘패키지’ 남북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국방부는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복원해 입장을 회신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북한에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은 군 통신선 회신은 물론 북한 공식 매체를 통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20일자 노동신문에서 “남조선 당국이 상대방을 공공연히 적대시하고 대결할 기도를 드러내면서 그 무슨 ‘관계 개선’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여론 기만행위다”고 비난한 게 전부였다. 남북 적십자회담에 대한 반응도 아직까지 없다.

문 대변인은 입장 발표 후 “(정전협정 64주년인) 27일까지는 적대행위 중지를 위해 대통령이 제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대화 제의도) 유효하다고 보면 된다”며 “그래서 다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선제적 조치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대해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후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지금 북측의 공식 반응이 없는 상태에서 추가 제안 등 계획을 하고 있는 바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미국과 일본의 부정적 반응 속에서도 남북대화를 강력하게 추진했었다. 특히 남북 군사회담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첨예한 군사적 충돌과 전쟁위험을 해소해야 한다”며 지난해 5월 제7차 당대회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요구했던 사항이었다. 이 때문에 당초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위해서라도 북한이 남북 군사당국회담에 응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김근식 경남대(정치외교학) 교수는 “우리가 서두른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예전엔 남북 간 물밑 접촉을 통해 공감을 이룬 뒤 공식적으로 남북대화 제의가 오갔다. 그러나 현재 채널은 모두 끊긴 상태”라며 “더군다나 ‘21일’로 날짜까지 못 박아 북한이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즉각 거부 입장을 밝히지도,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역제안을 하지도 않은 것은 내부적으로 고민이 있다는 뜻”이라며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된 관성도 있고 북한으로서도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일단 정부는 북한이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회담 제안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고 인내심을 갖고 계속 회담 개최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