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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16만 명 정규직 전환 … 정부 재원 대책은 깜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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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올해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청소·시설관리와 같은 파견·용역직원도 대상이다. 공공부문 내 전체 비정규직과 파견·용역회사 직원은 31만 명이다. 이들 중 실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은 14만~16만여 명이 될 전망이다. 2년 이상 일할 상시업무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전국 852개 기관 올해부터 실행 #필요 예산 조달 방안 설명 못한 채 #정규직 임금 동결 등에 막연한 기대 #돈 없어 청년 5% 고용도 못 지킬 판

그러나 재원대책이 없어 추진 과정에 논란이 일 전망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기관별로 총정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정규인력이 확 늘어나면 청년 고용 등에 악영향도 우려된다.

정부는 2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을 심의 의결했다.

현재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국공립교육기관 같은 852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184만 명 가운데 기간제 근로자는 19만1233명, 파견·용역 근로자는 12만655명이다. 이들 중 향후 2년 이상, 연중 9개월 이상 일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력은 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뀐다.

이 조건에 해당한다고 모두 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외도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 운동선수 같은 한정된 기간에만 특기를 활용하는 경우, 휴직 대체인력, 고도의 전문직무 등이다. 기간제 교사나 강사도 제외될 공산이 크다. 법령에서 기간을 정하는 교사와 강사 가운데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경우는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다만 각 교육청별로 강사와 교원, 사범대생, 학부모로 구성된 전환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한 뒤 전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파견이나 용역회사가 공공기관의 자회사라면 여기에 속한 근로자도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컨대 서울메트로에서 일하는 청소근로자는 서울메트로 산하 메트로환경 소속이다. 정부는 이들 회사가 비록 용역을 위한 자회사지만 공공기관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조건을 고려하면 정규직 전환대상자는 청소·경비·시설관리원 같은 파견·용역 근로자 12만1000명에 사무보조, 영양사 등 2만여 명을 포함해 총 14만~16만여 명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1단계로 852개 기관에 대해 정규직 전환작업을 마무리한 뒤 2단계로 자치단체 출연·출자기관과 지방공기업 자회사, 3단계로 일부 민간위탁기관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키로 했다.

또 무기계약직 21만2000명에 대해서는 차별해소와 처우개선에 나선다.

문제는 돈이다. 정부는 “9월까지 소요재원을 파악해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소요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정규직 전환 규모가 가장 큰 파견·용역 대상자는 기존 임금에다 도급을 줄 때 용역업체에 주던 운영비(8%)와 이윤(7%)를 합해 15% 정도를 더 얹어줄 계획”이라며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계산법을 적용하면 파견·용역 근로자는 정규직 전환으로 월 20만~30만원 가량 임금이 인상된다.

그러나 이는 단순계산일 뿐이다. 각종 복지혜택과 상여금 등이 기존 직원과 같아져 인건비 상승은 불가피하다. 특히 최저임금이 내년부터 월 22만1540원 인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월급여도 오르게 된다. 이런 재원은 기획재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져야 한다.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정규직이 임금동결 등 연대의식을 발휘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규직의 양보에 기대는 이런 대책이 먹힐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각 공공기관은 총정원을 정해 엄격하게 관리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그만큼 정원이 늘어난다. 신규채용 여력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특히 내년부터 공공부문의 청년의무채용 비율이 올해 정원의 3%에서 5%로 상승한다. 지금도 경영합리화 정책이나 총정원 관리 때문에 4곳 중 한 곳은 3%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 의무고용률을 맞추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기존 파견회사나 용역회사는 졸지에 폐업위기에 몰릴 수 있다. 공공기관 용역이 사라지고, 직원도 모두 공공기관에 흡수되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들에 대한 정부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향후 민간부문에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정부가 파견회사와 용역회사 소속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보는 정책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잣대를 민간에 적용하면 기업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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