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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국민연금, 형평성 배려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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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더 내고 덜 받아라'. 좋을 사람이 없다. 노후의 생계보장을 위해 빠듯한 수입을 쪼개 국가에 맡겼는데 사정이 바뀌었다고 용돈 정도의 연금만 주겠다고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보험요율, 즉 소득금액 중 연금보험료로 부담해야 할 비율은 높이면서, 연금에 가입한 기간의 평균소득 중 연금으로 받을 비율인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에 따라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고 연금을 탈 사람은 늘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반대와 비판도 만만치 않다.

*** 정부가 산출한 출산율에 문제

정부의 개정안은 미래에 대한 여러 예측을 기초로 한다. 출산율.평균수명.임금상승률.물가상승률.기금투자 수익률.징수율 등. 반대 의견은 다른 연금과의 형평성, 연금기금 운영 주체, 보험료 징수율 제고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정부가 기초로 한 출산율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02년 통계청 출산율을 기준으로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향후 출산율 상향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정책 목표치인 1.8명을 근거로 보험요율과 소득대체율을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 즉 가임 여성 1인당 출산 자녀수는 1.1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 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되면 2150년 우리나라의 인구는 '0'이 된다고 한다.

출산 파업의 결과가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로 현실화하면서 국민연금을 비롯해 사회 여러 분야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주로 부양받을 인구는 증가하는데 부양할 인구는 감소한다는 측면에서.

이에 따라 출산은 개인 또는 개별 가정, 특히 여성의 선택이고, 그에 따른 부담이나 책임도 개인의 문제로만 보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출산의 사회적 의미.기능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면서 사회 존립에 필요한 출산율을 유지하기 위해 출산.육아에 대한 비용을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또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 산전.산후 휴가, 육아휴직을 비롯한 모성보호제도를 확충한다고 한다.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담없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보육 시설을 확충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얼마 전엔 출산을 장려하고 자녀를 건전하게 키울 수 있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셋째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대학등록금을 포함한 양육비를 지원하고, 출산정보센터를 설치하며, 산후 조리.육아보조 가정도우미를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변화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지만 앞으론 자식이 있어도 좋은 팔자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출산에 대한 요즘의 논의를 보면 출산 그 자체가 갖는 절대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고, 미래의 부양자가 필요한 부모 세대의 입장만 강조하는 것 같아서.

좀더 현실적으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세대 간의 형평성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그렇다.

*** 미래 세대 이익 대변자는 없나

수익자와 비용 부담자가 일치하는 경우 형평성이 문제되지 않는다. 수익자와 비용 부담자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양자가 모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시킬 기회를 갖는다면, 그 과정에서 형평성을 기할 수 있다.

문제는 수익자와 비용 부담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쪽만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다. 보험료를 부담하는 세대와 연금을 수령하는 세대가 달라지는 국민연금의 경우 자원의 사용.보존 문제, 환경파괴 또는 보호 등을 들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이익은 부모 세대가 누리고, 다음 세대에는 빚만 물려줄 수도 있다. 미성년자인 자녀와 부모의 이해가 상반되는 경우 부모가 아닌 제3자가 특별대리인으로서 미성년자를 대리한다.

그러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다음 세대의 이익을 대변해줄 제3자는 없다. 우리가 단독으로 결정한다.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 형평성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출산정책의 성패 같이 불확실한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좀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조수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