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재인 정부 ‘증세 공약’ 왜 후퇴했나…반복되는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19일 발표됐다. 문제는 돈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19일 발표됐다. 문제는 돈이다.

문재인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해 100대 국정과제에 178조원의 돈을 쓰겠다고 하면서 정작 세금 문제는 명확히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야당에선 “재원 무대책 발표이자 민생 무대책 증세로 이어질 수 있다”(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20일)는 비판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비교해도 증세 문제에 대해선 후퇴한 게 드러난다. 공약집에는 ‘소득세 최고세율 조정’, ‘초고소득 법인의 법인세 최저한세율 상향’을 명시했지만 새 정부 청사진에는 ‘소득세ㆍ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은 재원조달의 필요성, 실효 세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추진’이라고만 적었다. 일단 명시적으로 증세하겠다는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과거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하면서 “법인세 정상화 등 ‘부자감세’ 철회를 기필코 이뤄내겠다”고 했었다.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논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부터),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우원식 원내대표와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왼쪽부터),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우원식 원내대표와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왜 증세를 말하지 않을까. 증세 문제는 휘발성이 큰 정치권의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노무현 정부만 봐도 세금 문제는 정권의 힘을 약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했다. 소위 ‘상위 1%’에만 과세하겠다며 신설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양도세 강화 등은 노무현 정부가 2006년 지방선거에서 패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는 종부세 논란을 두고 “조세 저항 심리를 실감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가까이는 박근혜 정부의 경험도 있다. 정권이 끝날 때까지 공식적으로는 증세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박근혜 정부지만 ‘사실상의 증세’ 때문에 곤욕을 겪었다. 국민건강을 이유로 담뱃세를 올렸지만 흡연율은 크게 줄지 않고 결국 우회적으로 세금을 더 걷기만 한 게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멀리는 19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가 유신체제에 대한 민심의 저항을 촉발시켜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린 경험이다. 도입 이후 10% 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부가가치세는 지난해 전체 국세 세수 중 26.9%를 차지해 소득세(29.8%)이어 두 번째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 곳간을 채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조세저항으로 인해 정치적 부담은 매우 컸던 것이다.

대선과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사례를 보더라도 증세보다는 감세가 표를 얻는 유리한 전략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인권ㆍ환경 등에선 진보적 목소리를 내면서도 법인세와 사회연대세 등은 내리는 감세 정책을 펴고 있다.

정치권에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청와대가 증세 문제를 본격 거론하긴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