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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싣는 리어카에 후미등 공짜로 부착 … 노인들 ‘안전 지킴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리어카 선행’ 실천 양태양씨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리어카용 후미등을 개발한 양태양씨. [신인섭 기자]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해 리어카용 후미등을 개발한 양태양씨. [신인섭 기자]

2015년 겨울밤, 꽝! 소리에 돌아보니 폐지를 실은 리어카가 널브러져 있었다. 쓰러져 있는 할머니와 한숨만 쉬는 하얀 승용차 운전자가 보였다.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양태양(20)씨는 사고를 보며 생각했다. ‘북유럽 노인들은 연금 받아 1년에 2번씩 해외여행을 간다던데 우리나라 노인들은 왜 안전조차 위협받으며 일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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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성금을 모아서 노인들에게 전달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좀 더 지속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그 마음에 친구 4명이 더 모였다. 조사해 보니 가로 폭이 1m 정도인 리어카는 인도에서 끌고 다니기 어려웠다. 대부분 차도로 다녀야 했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작업은 주로 밤에 이뤄졌다. 밤에도 리어카가 잘 보일 수 있도록 ‘후미등’을 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어두운 밤 빛이 되고자 ‘샤인 더 월드’라는 동아리가 탄생했다.

반응은 차가웠다.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들은 “그게 되겠니” “입시부터 신경 써라”며 한마디씩 했다. 평균 1.8등급이던 모의고사 성적이 3.5등급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침대 밑에 넣어둔 공구 상자 9개를 모두 할머니 댁에 숨겨버렸다. 다행히 할머니는 손자 편이었다. 필요한 공구를 할머니 집에서 몰래 가져왔다. 이번엔 오래 쓸 수 있고 방수까지 되는 LED 등을 리어카에 달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세뱃돈 20만원까지 털어가며 재료를 샀지만 역부족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인터넷에 올린 제작 영상이 반전을 일으켰다. 계좌에 바로 13만원이 입금됐다. 소셜 기부 플랫폼 ‘쉐어앤케어’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연락이 오고, 12일 만에 100만원이 모였다. 4개월 만에 시제품이 나왔다. 주변의 반대도 “넌 그거로 먹고 살겠다”는 격려로 바뀌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보통 비 오는 날 쉬었다. 비 오는 날만 기다렸다가 어르신들을 찾아 나섰다. ‘설치비 받는 것 아니냐’며 피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따라다니며 공짜로 후미등을 달아드렸다. 고장 나면 무료 에프터서비스도 약속했다. 대학에 진학해 기계공학을 전공하게 된 양씨는 이제 사회적 기업 ‘끌림’과 ‘리어카 프로젝트2’를 준비 중이다. 리어카에 광고판을 달아 노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끌림 리어카’엔 적외선 센서를 달기로 했다. 리어카를 끌고 작업하는 동안 유동인구를 파악해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후 모터를 달아 전동리어카를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광고에서 ‘저스트 두 잇!’이라고 하잖아요. 일단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다가 못 넘을 것 같은 언덕이 나오면 ‘못 넘어가요’라고 주변에 말하면 돼요. 주변에 이 언덕을 넘을 수 있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그중에는 기꺼이 도와주는 분들도 많고요.”

이태윤 기자 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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