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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남북대화? 한국에 물어보라” 삐걱대는 한·미 공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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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에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지난 4일 발사한 화성-14형에 대한 평가 ▶미국이 추진 중인 세컨더리 제재(북한과 합법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개인 제재) ▶한국의 군사·적십자회담 제안 등 각론에서 양국이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비핵화 뒤 대화 입장 고수 #한국의 대북 제안에 불만 드러내 #세컨더리 제재 등 잇단 불협화음 #외교가 “전략협의체 열어 조율을”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의 회담 제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한국 정부에서 나온 말들이니 한국에 물어봐 달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대화를 위해)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에 대해 명확히 해왔고, 이 조건들은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와는 분명히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내건 대화 재개 조건이 북한의 분명한 비핵화 의지 표명인 상황에서 한국의 선(先) 군사·적십자 회담 동시 개최 제안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이다.

일본도 “지금은 압력 강화할 때” 비판

일본도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 중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17일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북한은 새로운 단계의 위협”이라며 “이달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지금은 압력을 강화할 때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번 제의에 관한 취지와 여러 상황을 미국 등 주요국들에 설명했고 충분한 이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앞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4일 마크 내퍼 주한 미대사대리를 만나 정부의 대북 회담 제안 계획과 취지를 설명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본지 인터뷰에서 “발표 전 미국에 알려주고 이해를 구하며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일과 한국 간의 이견 노출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추가적인 대북제재 결의안과는 별도로 독자제재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세컨더리 제재에 대해서도 정부는 극도로 신중한 자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1차적으로 안보리 추가 결의를 먼저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세컨더리 제재에 대해 한·미 간 구체적 협의가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에 대한 동의 의사를 아직까지 전달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의 독자제재를 강하게 반대하는 중국과 군사·적십자 회담을 제안해 놓은 북한의 입장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반면에 일본은 미국이 세컨더리 제재에 착수할 경우 동참 의사를 이미 밝혔다. 미 행정부 내 사정에 밝은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에 대화를 재촉하는 듯한 모양새는 전형적인 유화(appeasement)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지난 4일 북한이 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에 대한 양국 간 평가도 여전히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발사 초기부터 화성-14형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보는 반면 한국은 대기권 재진입 성공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ICBM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지난 7일 독일에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선 ‘대륙간 사거리를 갖춘 탄도미사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미국은 “ICBM이다”, 한국은 “완벽한 ICBM은 아니다”는 입장이 만들어낸 신조어인 것이다.

외교가 안팎에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한 양국 간 갈등이 진행형인 상황에서 이 같은 각론상의 이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국 고위급 전략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 한·미 정상회담 합의 사항이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본격적인 고위급 전략협의체 가동을 통해 한·미 간에 대북정책의 큰 방향과 각론에 대한 세부 조율작업이 매우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차세현·박유미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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