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인 고검장 사의…"검찰, 사기업이었으면 존립 못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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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사직 의사를 밝힌 오세인 광주고검장. [중앙포토]

17일 사직 의사를 밝힌 오세인 광주고검장. [중앙포토]

오세인(54·사법연수원 18기) 광주고검장이 17일 사직 의사를 밝혔다. 사법연수원 동기인 문무일(56) 부산고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4일에 지명된 지 13일 만이다.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와 연수원 18기 동기 #최종 후보 4인에 함께 올랐다 '희비' 엇갈려 #'사기업'에 검찰 빗대…"존립 기반 잃었을 것" #"국민 기대 미치지 못한 수사, 보충수사 필요"

오 고검장은 문 총장 후보자와 함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최종 4인 후보 중 한명이었다. 문 총장 후보자 지명 이후 박성재(54·17기), 김희관(54·17기) 법무연수원장이 지난 7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검찰을 떠났고 검찰에 남아 있는 4명의 18기 검사장 중에선 오 고검장이 처음으로 사표를 냈다.

오 고검장은 이날 오후 3시 55분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이제 검찰을 떠납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별도로 첨부한 글에서는 개혁 대상으로 전락한 검찰을 떠나는 소회도 밝혔다.

그는 “많은 분이 검찰의 위기를 말한다”며 “지금 검찰이 맞은 위기는 보다 근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오 고검장은 개혁 요구를 직면한 검찰의 처지를 ‘사기업’에 빗댔다. 그는 “광주고검장 부임 이래 산하청 지도 방문할 때마다 늘 해오던 말이 ‘경쟁 위기론’이었다”며 “많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존립을 보장받았던 것은 경쟁 없는 업무환경 덕분이었다. 만약 검찰이 시장에서 동등한 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경쟁자를 가진 사기업이었다면 벌써 존립의 기반을 잃었을 것이다”고 적었다.

그는 “경쟁자가 등장하기 전에 보다 높은 품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해 그 수요자인 국민의 신뢰를 확보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급기야 경쟁조직의 설립이 거론되는 상황을 맞았다”고 덧붙였다. ‘경쟁자’란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를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 고검장은 “세계적인 기업들은 신뢰 상실을 가장 큰 위기로 여긴다”며 “더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검찰이라는 공적 서비스의 품질에 대한 시장 불신의 원인을 반드시 짚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과거의 수사에 대해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지난 시기에 문제됐던 사건들을 공론의 장으로 가져와서 무엇이, 어떻게 , 왜 잘못됐는지를 국민의 시각으로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미완의 수사에 대해서는 정의에 부합하는 보충수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신뢰회복의 출발점이자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검찰이 이런 위기에 봉착하게 된 이유가 검찰의 인사 제도에 있다고도 주장했다. 오 고검장은 “검찰 인사의 탈정치화와 객관성이 중요하다”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사건을 처리한 것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 검찰의 선차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끝으로 임진왜란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제봉 고경명 선생이 지은 '마상격문(馬上激文)'에 나온 구절인 “옳은 도리로 패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를 인용해 검찰 후배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겼다.

강원도 양양 출신인 오 고검장은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94년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로 부임했다. 이후 중앙지검 공안1부장, 대검 공안부장, 서울남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 뒤 신설된 반부패부의 초대 부장을 역임했다.

오 고검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퇴임 이후 서울 집으로 돌아와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 쯤 도보로 고향인 강원도 양양까지 여행을 할 생각"이라며 "한 열흘 정도 일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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