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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매장 넓은데, 한화에 공용면적 더해줘 높은 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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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내 면세점 선정 심사가 한창이던 2015년 11월 14일 천안 관세국경관리연수원. 이돈현 당시 관세청 차장이 느닷없이 일어서더니 종이에 적힌 글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감사원이 밝힌 불공정 심사 #5년 실적을 2년으로 기준 변경 #관세청 노골적인 조작 정황 포착 #대기업·정권 ‘주고받기’는 못 밝혀 #기업 불법 드러나면 운영권 반납

“시내 면세점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심화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고려해 달라”는 내용의 공정거래위원회발 협조 공문이었다. 표적이 당시 시내 면세점 시장 점유율 60%였던 롯데로 유추됐다. 사업자 발표 결과 롯데는 월드타워점을 잃었다.

감사원이 밝혀낸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의 무수한 불공정 및 조작 사례 중 하나다. 2015년 1차 선정 때는 노골적인 ‘한화 밀어주기’와 ‘롯데 잘라내기’ 정황들이 포착됐다. 매장면적 평가 시 한화만 매장면적(7520㎡)에 공용면적(1416㎡)을 더해 면적을 부풀려줬다. 그 결과 순수 매장면적이 7849㎡로 한화보다 넓었던 롯데가 더 나쁜 점수를 받았다. ‘법규 준수도 점수’ 산정 때도 평균점수 대신 최고점수(97.9점)만 기재하는 방식으로 한화에 특혜를 줬다. 중소기업 제품 판매 매장 면적 비율 산출 때는 역으로 롯데에만 다른 기준을 적용해 비율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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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차 선정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세청은 ‘최근 5년간 실적’으로 평가해 온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을 ‘최근 2년간 실적’으로 변경해 롯데의 점수를 깎았다. 결국 롯데는 총 191점을 손해 봐 두산에 104.5점 차로 패했다.

2016년의 신규 면세점 선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급하게 추진됐다. 2015년은 메르스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했기 때문에 원칙대로라면 이듬해에 새로 면세점을 허가해 줄 수 없었다. 관련 용역보고서도 “잘해야 한 개 정도 추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냈지만 청와대와 기재부, 관세청은 4개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2013년의 관광객 증가 통계가 재차 활용됐고, 용역보고서상 70만~84만 명인 ‘매장당 적정 외국인 구매고객 수’를 50만 명으로 줄였다.

당시 관세청에서 면세점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김모씨는 지난 7일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출석해 “(면세점 선정에서 탈락한) 롯데와 SK를 구제해 주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2016년의 신규 면세점 선정 절차는 박 전 대통령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독대(3월 14일)를 전후해 본격화했다.

남는 의문은 일련의 조작과 특혜가 대기업과 정권 간의 ‘대가 주고받기’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냐는 점이다. 박찬석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장은 “조작의 고의성을 일부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윗선 지시 내용 등은 피조사자들이 함구해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감사원이 2015년 조작에 관여한 관세청 관계자 4명과 업체들이 제출한 서류를 파기한 천홍욱 관세청장을 검찰에 고발한 만큼, 당시 주요 책임자들과 한화·두산 관계자 등은 본격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2016년 선정 관련자들은 고발되지 않았지만 이들에게도 불똥이 튈 가능성은 충분하다.

박 국장은 “2016년 사안은 추가 선정 절차 자체의 적정성만 감사 대상이었다. 현재 지난해 (롯데 등) 4개사 선정의 적정성에 대한 감사 여부도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고발 없이도 인지를 통한 수사 확대에 나설 수 있다.

해당 기업이 적극적 공모 등 범죄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입증되면 기업은 면세점 운영권을 반납해야 한다. 박 국장은 “거짓 또는 부정한 공모를 통해 특허를 따냈다는 확정 판결이 나면 특허 취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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