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12분간 "죄송합니다" "거부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재판장님. 제가 오늘 이 재판정에서 진실규명을 위해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변드리고 싶은게 본심입니다만 변호인들의 강력한 조언에 따라 제가 그렇게 못 할 것 같습니다. 재판 운영에 도움을 못 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검사님들 질문에 어떻게 제가 답변을 드려야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장충기 증인도 같은 이유로 증언 안해 #특검팀 "집단적·사전적·조직적인 증언거부 #"실체적 진실 바라는 국민 여망 저버렸다"

"대답할 경우 형사책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면 '증언 거부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되고, 증언하겠다고 하면 답변을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김세윤 재판장)"

"답변을 거부하겠습니다. (이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없는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나와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이 부회장은 1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재판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증인선서 후 이 부회장은 검찰과 변호인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거부하겠습니다"로 일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발가락 통증을 이유로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에게 최태원 SK회장과 주고받은 문자와 통화내역을 직접 보여주고 대통령 독대와 관련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물었다. 특검팀 강백신 검사는 "증인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를 마친 다음 날이자 최 회장이 독대하기 직전인 지난해 2월 16일 오전 9시 49분 두 사람은 260여초 통화를 했다. 계속 문자만 주고받다 이날 유일하게 통화했는데 어떤 내용인가"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죄송합니다"며 증언을 거부했다.

이 부회장은 이미 법정에 오기 전 재판부에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른 재판에서 뇌물공여죄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불리해질 우려가 있어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의 질문에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 부회장은 증인신문이 시작된지 12분만에 "원활한 진행에 도움을 못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법정을 나갔다.

함께 증인으로 소환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도 이 부회장과 같은 이유로 증언을 거부했다. 특검팀은 최 전 실장에게 "삼성 임원들은 자신들의 재판에 불리하단 이유로 집단적·일괄적으로 증언거부의사를 표명했느냐" "정유라가 독일에서 탄 말 라우싱1233의 국내 반입 경위를 설명해달라"등 질문을 던졌지만 최 전 실장은 모두 "거부합니다"로 답했다. 장 전 차장은 "증인은 2월 28일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지요?"라는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각각 5분과 4분만에 끝났다.

세 사람의 증인신문이 21분만에 끝나자 특검팀은 "뇌물 공여자들이 집단적이고 사전적이고 조직적인 증언거부를 해 공여자들의 진술을 재판부가 들을 수 없는 지극히 이례적인 사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앞서 특검팀은 '삼성 관계자들이 증언거부권을 남용하고 있으니 증언거부를 못 하게 하거나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진행중인 재판에서 불리해질 수 있으므로 증언거부권이 인정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팀은 증인들의 증언거부권을 인정한 재판부의 결정에 "별도로 이의신청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이 재판에 다시 증인으로 부를 필요가 있으면 재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특검팀 강백신 검사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핵심 역할을 한 삼성그룹 관계자들이 집단적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길 바라는 국민적 여망을 저버리는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검사이기 이전에 진정으로 삼성그룹이 국민 그룹이 되길 바라는 국민 한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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