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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이병규 … 17시즌 내달려온 ‘적토마’ 9번 영구결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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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장맛비 속에 떠난 ‘적토마’이병규

‘적토마(赤兎馬)’ 이병규(43·전 LG·사진)가 그라운드와 정말 작별했다. 지난해 말 은퇴한 뒤 TV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의 은퇴식이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LG-한화전에 앞서 열렸다.

43세로 공식 은퇴한 LG 스타 #우승 반지 없이 준우승만 세 번 #“후배에게 무거운 짐 맡기고 떠나 #내년엔 메이저리그서 연수 계획”

이병규도 LG 팬들도 아쉬움이 큰 작별이었다. 그는 지난해 2군 47경기에 나와 타율 0.401, 홈런 3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정규시즌 최종전(2016년 10월 8일) 날 1군에 복귀했고, 4회 대타로 나와 두산 니퍼트로부터 안타를 뽑았다.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타를 친 그는 팬들의 환호 속에 물러났다.

유니폼 대신 양복을 입고 8개월을 보낸 이병규의 삶은 어땠을까. 장맛비가 내린 잠실구장에서 ‘자연인’ 이병규의 얘기를 들었다.

프로야구 한화-LG전이 열린 9일 서울 잠실구장. 이병규(43·전 LG)가 이날 은퇴식을 끝으로 그라운드와 작별했다. 대신 LG 팬들은 그를 추억할 공간을 얻었다. 1루 측 관중석에 그의 유니폼 현수막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의 등번호(9번)는 김용수(41번) 전 LG 코치에 이어 LG 선수 중 두 번째로 영구결번됐다.

이병규는 “오랜만에 유니폼을 입었지만 어색하진 않다. 김용수 선배에 이어 영구결번 선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뤄져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는 이날 마운드에 올라 시구를 했다. 타석엔 아들 승민(12)군이 섰다. 이병규는 “타석에는 7000번 이상 섰으니까 마운드에서 한 번 던져보기로 했다”며 웃었다.

이병규(가운데) 은퇴식에서 LG 후배 정성훈(왼쪽)·박용택 이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이병규(가운데) 은퇴식에서 LG 후배 정성훈(왼쪽)·박용택 이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1997년 LG에 입단해 신인왕(타율 0.305)을 차지한 이병규는 일본 주니치에서 뛰었던 3년(2007~2009년)을 빼곤 17시즌 동안 LG 유니폼만 입었다.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선수로는 유일하게 30-30 클럽(1999년 30홈런-31도루)에 가입했다. 근육질 몸으로 힘차게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모습의 그에게 ‘적토마’라는 별명도 붙었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던 2013년 이병규는 프로야구 최고령 타격왕(0.348)에 오르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세대교체를 내세운 양상문 감독 부임 후 이병규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지난해 2군에서 4할대 타율을 기록하고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다 10월 8일 정규시즌 최종전 직전 1군에 복귀했다. ‘이별’을 위해서였다. 이병규는 “잠실에 오면 지난해 그 경기가 생각난다. (LG가 2위로 11년 만에 가을야구에 나선) 2013년 10월 5일도 떠오른다”고 했다.

이병규는 4회 두산 에이스 니퍼트로부터 좌전안타를 뽑아냈다. 지난해 이병규의 유일한 1군 기록이다. 안타를 치고 교체되는 그를 향해 팬들은 응원가 ‘LG의 이병규’를 소리 높여 불렀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으로부터 “4할을 칠 수 있는 타자”라는 칭찬을 들었던 이병규는 통산 타율 0.311, 167홈런, 147도루, 2043안타를 남기고 은퇴했다. 뛰어난 기록을 세운 타자였지만, 한국시리즈 정상에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이병규가 입단한 뒤로 LG는 준우승만 세 번(1997, 98, 2002년) 했다. 이병규는 “후배들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고 떠나는 것 같다. 단단한 모습으로 LG 팬들이 원하는 우승을 이뤄주길 당부한다”고 했다.

당초 LG는 영구결번되는 이병규의 등번호에 착안해 9월 9일 은퇴식을 여는 걸 고려했다. 그러나 이병규가 “9월은 순위 다툼이 치열할 시기이기 때문에 (그때 은퇴식을 하면)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사양했다. 그래서 LG는 은퇴식 날짜를 7월 9일로 바꿨다. 하루종일 내리던 장맛비는 은퇴식 직전 그쳤다. 섭섭함의 눈물 대신, 갠 하늘처럼 웃으며 보내주자는 뜻 같았다.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야구를 새롭게 볼 수 있어 재미있다. 내년엔 메이저리그에서 연수를 할 계획이다. 나중에 지도자로 그라운드에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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