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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끄는 갈고리로 뇌물 긁어모은 공무원들

중앙일보

입력

갈고리와 진화복 등 산불 진화장비 납품 수량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산불 진화장비 납품 비리에 연루된 한 지방자치단체 산불업무 팀장 박모(53)씨 등 13개 지자체 공무원 30명을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납품업자 6명도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납품 비리에 이용된 산불 진화장비들. [연합뉴스]

납품 비리에 이용된 산불 진화장비들. [연합뉴스]

경찰에 따르면 지자체 공무원 23명은 2010년 1월부터 작년 12월까지 특정 납품업체를 선정해 주는 대가로 브로커들로부터 100만원~2100만원까지 모두 94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다.

이들은 산불진화에 필요한 펌프나 진화복, 갈고리 등의 수량을 부풀려 과다 청구한 뒤 차액을 되돌려 받는 수법을 썼다.

실제로는 장비 1만 개가 필요한데 1만1500개를 발주하고, 나머지 1500개의 가격인 7100만원을 돌려받는 식이었다. 산불진화장비는 소모품으로 지정돼 정기 수량조사에서 예외로 지정됐기에 가능한 수법이었다.

산불 진화 작업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연합뉴스]

산불 진화 작업 모습.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연합뉴스]

또 다른 지자체 공무원 3명은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뇌물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한 업체에 한번에 2000만원 이상 발주하려면 공개 입찰을 해야한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6000만원짜리 발주를 3번으로 쪼개 특정업체와 수의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식이었다.

노모씨(56) 등 납품업체 직원 6명은 도청 공무원 4명으로부터 도 예산편성 관련 공문서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씨는 담당 공무원 워크숍에도 비공식적으로 참석하는 등 오랜 기간 친분을 맺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많은 예산이 편성된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돈을 주고 계약 수량을 조작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찰 조사결과, 공무원 박씨 등은 납품업자를 술자리에 불러내 술값을 계산하게 하고 담배 심부름을 시키거나 등산복·족욕기 등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등 ‘갑질’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산불 장비 구매에 정기적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을 악용한 공무원들과 업계의 불법 관행이 드러났다"며 "또 다른 지자체에 대해서도 관련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규진 choi.k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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