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GN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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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GNP(국민총생산)나 GDP(국내총생산) 등 경제용어에 익숙한 사람도 'GNC'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경제용어집에도 없는 'Gross National Cool'의 약자다.

미국의 저술가인 더글러스 맥그레이가 지난해 '포린 폴리시'라는 잡지에서 처음 썼다. 흔히 '시원하다'는 뜻의 'cool'이 여기선 '멋있다' '폼난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GNC는 이해하기 쉽게 GNP(Gross National Product)의 P를 C로 바꾼 것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국민문화총생산'이나 '국민문화역량'쯤 될까.

경제용어와 비슷하지만 동양화와 서양화 중 무엇이 더 예술적이냐를 재보겠다는 식의 속물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맥그레이는 국가가 지니는 문화적 역량이나 영향력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맥그레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게임.패션 등이 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예로 들면서 일본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일본은 거대한 GNC를 바탕으로 경제대국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수퍼파워'로 커졌다고도 했다.

GNC는 기발한 발상이긴 하지만 계량화가 쉽지 않다. 맥그레이도 GNC를 숫자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일본 마루베니(丸紅)경제연구소는 무역통계를 토대로 일본의 2002년도 GNC를 1조5천억엔으로 추산했다. 문화산업의 국제경쟁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해외저작권 수입, 영화.출판물 수출, 해외 흥행수입 등을 GNC로 잡았다고 한다.

이는 1992년의 5천억엔에 비해 10년새 꼭 세배로 늘어난 것이다. 일본이 90년대 내내 불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부쩍 높아졌다는 뜻이 된다.

이를 미화로 환산하면 약 1백25억달러다. 우리의 수출에 견준다면 지난해 한해 동안의 승용차(1백34억달러)나 컴퓨터(1백29억달러) 수출과 맞먹는다.

얼마 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개막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5년내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지식문화 강국'은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라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경쟁력 수준을 알아볼 만한 데이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GNC가 어느 정도인지, 세계 5위권에 들려면 이를 얼마나 어떻게 늘려야 하는지 궁금하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