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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성평등 위해 예민한 더듬이 만들어 주죠, 사회학자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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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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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1일, 책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쓴 사회학자 오찬호 작가가 인문학 강연을 위해 일산대진고를 찾았다. 강연의 주제는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아닌 사람답게’다. 청소년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인 ‘남녀평등 문제’를 주제로 한 강연이었기에 기대 반 긴장 반, 그리고 추가로 걱정 반까지 도합 150%의 심정으로 강연장에 찾아갔다.

[사진제공=오찬호]

[사진제공=오찬호]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강연자에게 궁금한 점을 포스트잇에 써서 붙이는 게시판이었다. 포스트잇 속 내용은 지금 청소년의 성평등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수준 높고 가치 있는 질문도 많았다. 그런 질문들은 실제로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으로 이어졌다. 반면, 더 눈에 띄는 쪽지들은 공격적이고 혐오성 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결국 쪽지 내용을 검토한 선생님들이 부절절한 것들을 떼어내고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 작가는 자신을 ‘세상을 긍정하는 염세주의자’라고 소개했다. 염세주의란 세계나 인생을 불행하고 비참한 것으로 보며, 개혁이나 진보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경향을 말한다. 반면 '세상을 긍정하는 염세주의자'란 비판을 잘 용납하지 않는 사회 풍조에서 세상의 부정적인 측면을 비판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긍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작가님은 "세상에 객관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려는 것이 오히려 세상을 부정하는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오 작가는 '유리천장'을 그 예로 들었다. 우리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이 존재한다. 동시에 그것을 뚫고 성공해내는 경우도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사회는 유리천장에 가로막힌 여성 전체를 보기 보다 유리천장을 뚫은 한 경우만을 바라보며 이를 긍정적으로 다룬다. 작가님은 "이런 점은 결국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예외가 아니라 평균이 어디까지 와있는지가 사회를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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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회가 병에 듦으로서 개인도 병이 든다"고 꼬집었다. 현대 사회에는 워킹 푸어, 일명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가난의 원인이 이들의 게으름에 있다고 곡해해 경쟁의 불공정성에 대한 논의를 종식시켜버린다. 심지어 이 와중에 취업이나 연봉 등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불이익을 받는다. 이 경우 여성은 사회에서 제시하는 강화된 여성성의 기준에 자신을 더욱더 맞추게 된다. 사회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공포로 인해 어느새 비판할 의지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남자다움을 강조하다보면 남녀간에 거리를 두게 되며, 동성애에 대한 혐오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사회적인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연은 ‘중립의 오류에 빠지지 말 것’을 강조하며 막을 내렸다. 주제와 내용 모두 흥미로웠고 알찼지만, 시간이 짧아 다양한 이야기를 다 꺼내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았다. 강연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그 중 눈에 띄는 질문도 있었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당사자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성평등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오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같은 상황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겪는 공포의 차이가 다르다. 오랫동안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공격적인 상황에 대한 공포가 축적돼 있지만, 남성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 공포의 차이가 바로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이다. 남성 자신은 그 공포의 크기를 알 수 없다."

또 오 작가는 "나는 남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뿐"이라고 덧붙이면서 "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지칭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다. 스스로 목숨 걸고 싸워온 여성 페미니스트와 동급으로 올리는 것 같아서"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작가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일산대진고 교내 신문부원 두 명, 그리고 선생님 두 분을 동행해 강연 후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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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를 보면 '메갈리안의 미러링'을 언급하며 ‘여성들이 논리적인 설명을 듣지 않는 남성들을 상대로 꺼낸 최후의 카드’라고 묘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의 행위를 ‘미러링’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될 수 없다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 또 스스로 여성 혐오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남성의 경우, 자신이 미러링에 의해 공격대상이 된다는 것을 불쾌해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점들로 볼 때, 메갈리안의 행동이 미러링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 또한 그 미러링은 과연 도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미러링은, 지금 시점에서 옳나 그르냐를 따지는 건 별 다른 의미가 없어요. 미러링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을 했느냐를 두고 판단해야죠. 이후는 사실상 진흙탕이죠. 이미 미러링이라는 기법 자체는 진흙탕이에요. 이런 와중에 미러링이 옳나 그르나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죠. 그런데 질문하신 것처럼, 미러링을 통하면 불특정 다수가 한꺼번에 이상한 남자가 되어 버려요. 바로 미러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운전을 잘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해보죠. 그게 남성일 때는 남성이라는 변수를 말하지 않아요. 그냥 ‘우이씨 나쁜 놈’이 되죠. 근데 그 사람이 여성이면 ‘김여사’가 등장해요. 뉴스에서도 교통사고 소식을 다루면서 가해자가 여성일 때는 가해자 성별까지 전해요. 남성일 때는 "가해 운전자는 당시 만취상태였습니다" 같은 식으로, 그러니까 사고를 낸 원인을 언급하죠. 그만큼 세상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그게 여성이란 존재의 한계인 것처럼 묘사해 왔어요. 이게 미러링을 만들어낸 가장 큰 요인이죠. 결론은 충분히 그런 반란을 저지를만한 배경이 전제에 있었다는 거예요."

-혹시 작가님 집안에서는 성평등 교육을 어떻게 하시나요.
"성평등 교육이라… 잘 모르겠네요. 제가 말하는 성평등이란 남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소수자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서요. 이런 일은 있었어요. 어느 날 제 아이가 학교를 갔다 오더니 겪은 혼란을 이야기하더군요. ‘아무도 아빠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이럴 때는 괜히 죄 짓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늘 딜레마에 빠져 살죠. 그럼에도 굳이 신경 쓰는 게 있다면 일상에서 모든 이야기를 할 때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외모에 대한 칭찬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외모를 가지고 칭찬하면 그 반대편에서는 역으로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서예요. 교육도 마찬가지지잖아요. 반에서 100점 맞은 사람 일으켜 세운 다음 박수치는 것도 비교육적이거든요. 이런 소리 하면 "그게 대체 뭐가 문제냐"라며 종북좌파란 소리를 듣기도 해요.

그런데 그냥 '아름다운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넘어가다보니까 방송에서도 "여자는 예쁘면 고시 3관왕" 같은 소리나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어떤 한쪽이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아이가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고 외모적 기준의 굴레에 스스로 빠져있지 않게 커 나갈 때 칭찬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정도에서 평등 교육을 하고 있어요. 둘째 아들의 경우에는 보수적인 집안에서 바라보는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요. 그런 것에 딸과 아들이 물들지 않도록 노력해요. 저 스스로는 "남자가 그러면 되나"라는 식의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사실 무척 많아서, 다 신경 쓰려면 머리가 터질 지경이죠. 실수했을 때 자각하고 빈도수를 줄여나가면 성공적인 교육이라고 기대하는데, 사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드니까. 아쉬워요."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교육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작가님의 저서를 보면, 성 인식에 있어 가정교육보다 사회화기관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딸의 경우를 통해 느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장 우리가 다니는 학교도 그에 포함되는 개념이잖아요? 그렇다면 성평등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학교라는 사회화기관에서는 어떤 노력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노력이 필요하다면, 바로 시민 교육이겠죠. 그런데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사실상 시민이 되기 위한 일이에요. 하지만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콧방귀도 안 뀌죠. 지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입시의 문화’를 기준으로 모든 학교가 평가를 받으니까요. 서울대에 몇 명이 가냐를 놓고서 좋은 학굔지, 나쁜 학굔지를 자랑하죠. 그러니까 그런 지점들이 확연히 사라지게 될 때, ‘이 학교는 정말 젠더 감수성이 뛰어난 학교야’ 이런 점이 어필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지만, 그런 노력과 교육이 가능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런 전제가 없는 상태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게 뭐가 중요해. 수능에 나오지도 않는데’ 이렇게 되는 거죠. 일상에서 해야 하는 여러 가지 노력도 분명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대입의 결과를 가지고 학교를 평가하는, 그러한 지점이 낮아지고 다른 시민 교육이 가능해지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종교계에서의 성차별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는데요. 보편적으로 종교는 존중되야 한다고 여겨지지만, 그런 종교가 인권 침해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과연 종교의 자유가 인권 존중이라는 가치와 맞물렸을 때도 존중되어야 할까요.
"어떤 종교이든 간에, 종교는 사회 안에 존재하죠.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적 가치를 벗어나는 종교의 자유, 종교의 권한이라는 건 없다고 봐요. 물론 종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그래서 어떤 종교는 막 세금도 내지 않겠다고 하죠. 그런데 우리가 절대로 협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종교이든 무엇이든, 사회 공동체 안의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는 것이에요. 인권 침해가 종교 안에서 행해지는 것을 두고 ‘종교니까 괜찮다’라고 바라보는 것은 사실상 모두의 사회적 직무유기죠.

또 이런 측면이 과거에 비해서 점점 종교의 힘이 약해지는 이유라고 전 생각해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예전에는 그게 차별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차별적 요소를 감지하죠. 이런 점 때문에 종교에 등 돌리는 사람도 있고요. 전 아주 바람직한 시민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인권을 말하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나뉘잖아요. 일례로 유명 여배우이자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의 경우 ‘남성과 함께 하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다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을 받은 적이 있고요. 페미니즘 안의 여러 가지 사상 중에서 본인이 보기에 ‘좀 아닌 것 같다’ 혹은 '본인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싶었던 것이 있으신가요.
"없어요. 그런데 없다는 게 다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예를 들면 심리학에도 사실 갈래가 많거든요, 그중 더 마음이 가는 이론이 있는 거죠. 페미니즘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그것을 재단해내는 것 자체가 사실상 학문에 대한 왜곡된 접근이죠. 다른 학문에는 그런 일이 없거든요. 사회학 안에 수십 개의 이론이 있고, 심리학 안에도 수십 개의 이론이 있고,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만, 네가 옳니 그르니 이렇게 따지지 않아요. 그런데 여성학에서만 ‘그래도 저런 여성학은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 나와요. 문제가 아니라 주장인데 말이죠.

게다가 한국의 남성들은 논리로서 이 개념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문화로서 이해해요. 첫째로 남자는 그저 ‘남자다운’ 존재고, 두 번째로 여자를 상대적으로 비하하는 두 가지 문화를 동시에 가지죠. 때문에 아무리 논리가 옳아도 그 벽을 뚫을 수가 없어요. 벽을 뚫으려고 할수록 남자들은 오히려 더더욱 외골수가 되죠. 그래서 저는 나름 전략적인 방식을 쓰고 있어요. ‘남자답게가 아니라 사람답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여성 비하하면 안 되잖아?’ 이런 식으로요. 하지만 이런 접근을 여성 페미니스트들은 싫어해요. ‘이렇게 온화하게 해서 뭐가 되겠냐’는 것이 이유예요. 사실 우리의 페미니즘은 남자가 남성만의 문화를 가지게 된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든요. 실제로 이런 구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남자가 변명을 하기 시작해요. 아닌 경우를 찾아오려고 하죠. 구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돼 있지 않아서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전략적으로 돌아가는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최근엔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는 등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인식의 변화만으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식의 변화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걸 가지고 평등해졌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현실은 과거에 비해서 폭력성이 줄어든 것뿐이니까요.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세계적인 평균치는 또 달라요. 여전히 가사노동의 차이 같은 것들이 한국이 유독 기울어져 있는 등 눈에 띄게 확연히 보여요. 이런 차이가 객관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라고 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이 지점이 굉장히 어려워요. 실제로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하면, 상대는 보통 "우리 가족 대단히 행복하다" 이렇게 말해요. 제가 보기에는, 글쎄요, 왜냐면 이런 집안일수록 남자는 더 남자답게 키우고 여자는 여자답게 키우고 그렇게 살아가거든요. 행복하겠지만, 사회적으로 과연 권장할 만한가를 묻는다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인식의 변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평등한 사회라는 지표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과거보다 다만 조금 좋아졌을 뿐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작가님 고향이 경상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보수의 상징이라고 하는 경상도 남자가 이 정도의 진보적인 인권 감수성을 지니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라는 책은 저 스스로 성찰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어요. 이렇다 보니, 책에 나오는 사례는 보통 우리 집 이야이게요. 재미있는 점은 우리집이 상당히 보수적인데 또 약간 선비 기질이 있어요. 그래서 ‘취업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생각은 증오해요. 우리집을 연구하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고 재밌어요. 또 일상을 제가 쓴 글처럼 살아서 그런 글이 나온다기보다, 글을 쓰다 보니까 제 일상이 이상해서 노력하게 되는 게 많아요. 부끄러우니까. 이런 점들이 맞물리면서 성찰하지 않았나 생각하는 거죠. 결국은 학문적인 주변 장치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 달에 한번 책 한 장 읽는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는 거죠. 자기성찰을 계속 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인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건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24시간 동안 어떤 정보에 노출돼 있느냐에 따라 그 여부가 달라지죠. 제가 야구를 무척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조기 야구회를 절대 가지 않는 이유는 그 문화가 너무 싫어서예요. 일요일 아침 4시간을 운동하고 술 마시고 음담패설하는 거요. 그 안에 들어가면 그 문화에 익숙해지니까 그게 싫어요. 이것도 되게 중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글을 쓰면 스스로 고립되려고 하는 버릇이 있어요. 좀 장황하게 말했지만, 정리하면 나한테 익숙한 것을 객관적으로 수정해 나가야 하는 시점들이 있다는 거예요. 물론 주변에서 왕따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차피 필요한 왕따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16주 동안 사회학 강의를 하면 10주차부터 고립된 외톨이가 되요. 제 수업을 잘 듣는 학생은 12주차부터 친구가 없어요. 14주차에는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죠. 저는 그게 아주 아름다운 갈등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책을 읽고 나면 학교 교실에서도, 집안에서도 불편하고 거슬리는 장면이 눈에 많이 띄어요. 그 전에도 계속 알고 있었지만, 그러려니 했던 장면들이죠.
"제 책이 제공하는 게 바로 그거죠. 예민한 다른 더듬이를 하나 만들어 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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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강연 중에 말씀하신 것처럼,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직장의 꽃으로 여겨지는 등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치게 되는데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수많은 여성이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자보다도 더한 노력을 하죠. 보통 성공한 CEO를 보면 아이는 다 다른 사람이 기르곤 해요. 그리고 사람들은 여성이 스스로 남성 사회를 극복해나간다고 표현해요. 제 생각은 달라요. 그저 예외가 될 뿐이에요. ‘저 사람은 저런 환경에서도 잘 성공했다’는 예외죠. 사회적 레일을 전복시킨다는 것은 한 번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죠. 스스로 도전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죠. 아닌 경우, 나와는 상관없더라도 도전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는지가 중요해요. ‘나는 어쩔 수 없지만 너는 참 대단하다’라는 식의 연대요. 이게 참 중요하거든요.

반대로 수많은 연대가 꺾이는 이유가 바로 ‘직장의 꽃도 아닌 게 저런다’, ‘꽃이 되려는 노력도 안 해보고 저런다’, ‘자격지심이다’ 같은 반응을 보여서예요. 누군가는 이런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지지하고 연대를 보여줘야지만 ‘이력서에 사진 안 붙이기’ 이런 일이 실제로 이뤄지는 거죠. 본인이 못한다고 현실 자체를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것은 잘못된 거니까요. 언행을 일치시킬 수가 없을 때 사람은 마치 자신이 잘못된 생각을 했다는 듯 쉬운 쪽으로 언행일치를 해버려요. 언행이 불일치함으로서 일어나는 불만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데도요.

연대의 방식도 다양하죠. 어른들은 보통 ‘객관적으로 연대 활동을 보여준 징표가 뭐가 있냐’라고 물어요. 결국 돈이니까. 지지하는 매체를 정기 구독하냐? 시민 단체 활동에 후원을 하느냐? 법안 마련하는 국회의원을 후원금을 내느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죠. 그런데 연대의 방법은 그것 말고도 많아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부터 트위터에서 리트윗을 해주는 것, 그리고 긍정의 한 마디를 전해주는 것까지 모두 포함돼 있죠. 그걸 바로 정치라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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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제가 이런 걸 제일 싫어해요. 막 조언을 하고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아, 그럼 이 질문은 넘어갈까요.
"음, '남자답게 여자답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더 평등하고 좋은 사회로 가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이정도면 될 거 같네요."

글=서정환(고양 일산대진고 1) TONG청소년기자 화정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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