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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화하자”는 문 대통령에 미사일 발사로 답한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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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로 응답했다. 북한은 어제 오전 평안북도 방현기지에서 동해로 ICBM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 발표에 따르면 이 미사일은 고도 2802㎞까지 치솟아 933㎞를 비행했다. 미사일은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이의 해상에 떨어졌다. 일본 열도를 넘기지 않고 최대 거리로 쏜 것이다.

북한, 알래스카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ICBM 발사는 선제타격 기준인 ‘레드 라인’ 넘는 행위 #문 대통령, “북한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지 말라”

문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북한이 여섯 번째 발사한 미사일이지만 그동안 발사한 미사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판도를 뒤집는 일종의 ‘게임 체인저’다. 대북정책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할 판국이다. 문 대통령도 이날 NSC를 개최해 “이번 미사일이 ICBM급일 가능성에도 염두에 두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캐머런 전 영국 총리 접견 자리에서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으면 우리(한·미)가 어떻게 대응할지 모른다”며 “북한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말라”고 경고했다.

어제 오후 북한의 ‘특별 중대보도’를 보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음을 말해 준다. 북한은 국방과학원 명의로 조선중앙TV를 통해 “대륙간탄도탄로케트(ICBM)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ICBM을 발사했다고 스스로 밝혀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반나절 앞둔 시점에서 미사일을 쏘았다. 미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ICBM을 시험 발사하면 선제타격하겠다고 강조해 온 터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화성-14형은 지난달 시험 발사한 화성-12형을 개량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컴퓨터 모의분석을 통해 이 미사일의 사거리를 8000㎞로 평가했다. 사거리 5500㎞부터 ICBM으로 분류하는 기준으로 본다면 이 미사일은 낮은 수준(Low Range)의 ICBM에 속한다. 미국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닿는다. 이런 북한의 미사일 개발 속도를 보면 미국 서부 해안(1만㎞)과 뉴욕이 있는 동부 지역(1만3000㎞)까지 닿는 핵탄두 장착 ICBM 개발은 시간문제다. 특히 이번처럼 ICBM을 과감하게 발사한 북한의 행태로는 6차 핵실험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북한은 금지선인 이른바 ‘레드 라인(Red Line)’을 넘고 있다.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과 관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군사적 제재단계로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누구도 취하길 원하지 않는 군사적 옵션을 포함해 다양한 옵션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판단과 대북정책을 새롭게 점검해야 한다. 지난 1일 워싱턴에서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갖겠다는 문 대통령의 제안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구성 제안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의 위협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소원해진 중국과의 공조체제 복원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