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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1) 허준 "동쪽에선 조선의학이 가장 훌륭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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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환은 동의보감을 연구하는 한의사다. 한국 최고의 의학서로 손꼽히는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제시하는 노년의 질환에 대비하는 방안을 질환별로 연재한다. <편집자>

총 25권 25책으로 구성된 '동의보감'의 모습 [중앙포토]

총 25권 25책으로 구성된 '동의보감'의 모습 [중앙포토]

한국 성인치고 동의보감이라는 이름 한 번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안 한편에 두껍고 먼지가 낀 책이 있다면 동의보감일 가능성이 있다. 유명한 것 치고는 제대로 읽히지 않는 아이러니한 책이 동의보감이다.

중국에 대놓고 '동의'라며 자기 실력 과시 #현대의학처럼 건강 관리의 중요성 강조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손에 드는 순간 묵직한 무게감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고, 빼곡한 한자들과 의학 용어들을 보면 그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리기도 한다. 가장 친숙하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책, 동의보감.

나 역시 한의학 공부를 하려고 처음 접할 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허준이라는 천재의 재능에 혀를 내두르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마치 옛날이야기를 풀어 놓은 전래동화책처럼 재미난 팔색조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

동의보감 하면 허준이 동시에 딱 떠오른다. 허준이라는 인물은 소설과 드라마에서 워낙 가공된 이야기를 많이 덧붙여 놓아 실제 역사 속의 허준과 많은 차이가 있다.

MBC 드라마 '허준' 의 한 장면. 전광렬, 황수정 [중앙포토]

MBC 드라마 '허준' 의 한 장면. 전광렬, 황수정 [중앙포토]

오죽하면 역사학자들이 허준이 남자다, 임진왜란 중 동의보감을 썼다는 정도만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허준 이야기는 전부 가짜라고 할까. 강연 중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이라든지, 아리따운 예진 아씨와의 러브스토리나 심지어 허준이 과거를 치는 설정도 모두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면 충격을 받는 분도 보았다.

모든 병은 생활습관에서 나와 

하지만 허준을 그런 허준으로 남겨두고 싶다. 한국 의학계에 얼마나 큰 업적을 남겼으면 숱한 영웅적 이야기들이 덧붙여졌을까. 허준이 남긴 동의보감의 가치를 알아주고, 허준이 위대하다는 정도의 마음만 가져도 충분하겠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조선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의학에 영향을 미친 만큼 이제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과 책에 실린 인체 그림. [중앙포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과 책에 실린 인체 그림. [중앙포토]

앞으로 이런 동의보감의 내용을 쉽고 재밌게 풀어드릴 참이다. 그 전에 동의보감에서 전하고자 하는 두 가지 의도를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동의보감이 그 이전의 의서들과 확연하게 다른 것이 바로 목차다. 목차는 책을 편집하는 의도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부분이다. 사실 동의보감 내용은 허준이 창작해서 쓴 부분이 하나도 없이 인용만으로 구성한 것이다. 동의보감의 가장 큰 자산은 목차에 드러나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 마디로 치료와 건강관리로 허준의 동의보감 전과 후가 나뉜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도 질병을 먼저 적고, 처방법을 적는 텍스트가 많듯이 예전의 의서들 대부분이 질병명·원인·치료법의 순서로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동의보감은 첫 부분이 질병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신체는 어떻게 구성이 되고, 사시사철에 따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병이 병 자체의 문제보다는 병에 걸린 사람의 생활습관에서 온 것이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섭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아픈 사람은 나쁜 습관이 오랜 기간 동안 몸에 배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현대에서도 통한다. 현대사회에서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이라고 부르듯이 생활습관을 중요하게 여긴다. 건강한 생활습관이 동서고금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강조하는 섭생, 양생의 방법은 현대인의 건강관리에서 시사하는 면이 많다.

약초 [중앙포토]

약초 [중앙포토]

동의보감이 민간약초를 잘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의미가 있다. 선조는 재위기간 중 잘 한 것이 별로 없는 임금이었다. 나라가 전쟁통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망칠 생각부터 했으니까. 나라를 살린 이순신 장군이 인기가 더 많아질까 두려워 상이 아니라 벌을 주기까지 했다.

아마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아 정신력이 약해져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니 건강에 관심이 지대해 허준을 불러 지금까지 의서들이 엉망이니 제대로 한 번 만들어 보라고 명하게 된다. 동의보감을 편찬하게 만든 건 선조가 그나마 내세울만한 업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허준에게 내린 명에 "우리나라에는 향약이 많이 생산되나 사람들이 알지 못 할 뿐이다. 산지를 분류하고 향명을 병기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 는 대목을 보면 못난 왕이라 하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 서문, 법인문화사 p.59)

허준 역시 이를 받들어 당약과 향약을 함께 기재했는데, “향약은 우리나라에서 쓰는 이름과 산지 및 채취하는 시기와 말리는 법을 써놓아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해, 멀리서 구하고 얻는 데 어려움을 겪는 폐안을 없애고자 하였습니다"라고 썼다. (동의보감 집례, 법인문화사 p.63)

이 때부터 우리나라는 약초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나라가 되었다. 의사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약초를 구해 쉽게 다려 먹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관리하는 능력 또한 높아졌다. 한국 사람이 일벌레라고 할 만큼 부지런한 것은 건강관리가 잘 돼 체력이 뒷받침해 주니 그런 게 아닐까?

동아시아 의학에 지대한 영향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전체의 의학에 미친 영향이 굉장했다. 유네스코에서도 그 의의를 인정했다. 당시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라 감히 중국을 넘보는 것은 불경한 일이기도 했는데, 허준은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과시했다.

허준 [중앙포토]

허준 [중앙포토]

이를 테면 “중국에는 북쪽과 남쪽에 각각 유명한 의사가 있다. 그런데 동쪽에는 우리 의학이 가장 훌륭하다. 그러니 나는 이것을 동의라 부르겠다”는 식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제일이다’고 천명한 것이다.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양의학과 대등하게 의료를 펼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니 허준의 말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듯 하다.

마지막으로 보감의 뜻을 살펴보자. 허준은 이렇게 설명했다. “감이란 만물을 밝게 비춰주어 형체를 조금도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지금 이 책도 책장을 넘겨 한 번 보면, 길흉과 경중이 밝은 거울을 보듯 환히 알 수 있을 것이라 동의보감이라 이름을 지었으니, 옛사람들의 남기신 뜻을 사모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hambakus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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