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 불신 키우는 ‘골프연습장 납치·살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지난달 24일 발생한 40대 주부 납치·살해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피해 여성은 경남 창원의 한 골프연습장에서 승용차에 골프가방을 싣던 중 괴한에게 끌려간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람의 왕래가 잦은 장소에서,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도 없이, 납치 2시간 반 만에 살해하고, 목숨의 대가로 얻어낸 돈이 현금인출기에서 빼낸 고작 410만원이란 점에서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일단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으로 추정되지만 원한이나 청부살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대담하고 끔찍한 수법에 여성들 사이에 ‘나도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경찰이 1주일이 넘도록 사건 대응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답답하다.

최근 연약한 여성들이 흉악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 피해자 3만1400여 명 가운데 여성이 88.9%(2만7940명)로 나타났다. 열 중 아홉이 여성이란 얘기다. 이는 2000년에 비해 4.5배가 증가한 수치다. 또한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응답한 여성의 50.9%는 사회 안전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했다. 치안 불신이 이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를 때까지 경찰이 뭘 했는지 묻고 싶다. 창원 납치·살해 사건은 여성들의 경계심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요즘 경찰의 최대 관심사는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독립이다. 검찰 권력을 경찰로 분산시켜 견제와 균형을 맞추자는 주장에 공감한다. 그러나 수사권 독립은 정권이 거저 주는 선물일 수 없다. 국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만 부여된다. 치안은 경찰의 1차적 존재 이유다. 여성들이 범죄 피해의 망상을 머리에 지고 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경찰을 신뢰하겠는가. 치안, 그 기본적인 일을 똑바로 할 때 국민은 경찰의 편에 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