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철도 개혁 10년 역주행, 누굴 위한 정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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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정부가 10여 년간 공들인 ‘철도 개혁’을 백지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서고속철도(SR)와 코레일의 통합 추진에 이어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을 합치는 문제까지 불거져서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사회적 합의에 따라 건설·운영 분리 체제로 전환한 철도 정책이 같은 진보정권에서 뒤집히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빌미는 대선 당시 노동계에 한 약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한국노총과 ‘코레일·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한다’는 정책협약을 체결했으며, 이제 빚 독촉을 받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난감한 입장을 눈치챈 국토교통부는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에 “두 기관의 통합을 검토하겠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출범해 철도운임 10% 인하와 객실 서비스 개선으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온 SR을 뜬금없이 코레일에 통합하겠다는 발상보다 더 예민한 문제다. 철도의 시설·운영 분리는 독일·프랑스·영국 등 철도 선진국들이 20~30년 전 도입해 성공한 모델이다. 우리도 김대중 정부 때부터 치열한 논의를 시작해 13년 전 철도청 독점체제를 깨고 시설은 공단에, 운영은 코레일에 맡겼다. 그간 경쟁력과 서비스 향상 효과가 작지 않았다.

아무리 대통령과 노동계의 약속이 중요하다 해도 공론화 과정도 없이 정책을 뒤집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토부는 공공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명분이 약하다. 코레일의 채산성 약화는 수익성 좋은 SR을 독립시켰다거나 철도 체계를 시설과 운영으로 분리해 생긴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툭하면 국민을 볼모로 파업하고, 방만 경영의 구태를 깨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 아닌가.

철도산업은 중요한 국가 기간 시스템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정책을 바꿀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노동계와의 무리한 약속에 연연하지 말고 명확한 효과 분석과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정책 방향을 신중하게 결정하기 바란다. 노조에 휘둘리면 경쟁력도 떨어지고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