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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만 잘나가”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롤링레이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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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4월 29일 새벽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달리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시속 100km 정도로 공항으로 달려가던 A씨의 차량 앞에 비싼 외제차 몇 대가 나타났다. 잠시 후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우라칸·가야르도, 맥라렌 650S 스파이더, 벤츠 CLS 63 AMG, 아우디 R8·A7, 쉐보레 카마로 등 9대의 '수퍼카'가 공항 방향 3개 차로를 모두 점령하더니 시속 10~20km로 속도를 줄였다. 처음에는 '사고가 났나' 싶었지만, 수퍼카 9대는 대형을 유지하며 뒤차가 추월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대열을 갖춰 일정 지점까지 서행 이동한 뒤, 정해진 구간에서 최고 속도를 내 승자를 가리는 이른바 '롤링 레이싱'을 벌이기 위해 모인 차들이었다. 다른 무리가 뒤차를 막는 동안 앞에선 두 대씩 짝을 지어 최소 시속 260km로 경주를 벌였다.

A씨는 비행기 출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지만, 비싼 차와 부딪칠까 봐 멀찌감치 떨어져 비상 깜빡이를 켜고 서행해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속 100km로 달려온 다른 차들도 황급히 제동하고 비상 깜빡이를 켰다. A씨는 "앞으로는 수퍼카를 박지 않게, 뒤로는 달려온 차가 내 차와 부딪치지는 않을까 살피며 운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서부경찰서는 이날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레이싱을 벌인 김모(37)씨 등 수퍼카동호회 회원 9명을 난폭운전 등 혐의로 입건했다. 피의자들은 모두 20·30대로 고소득 자영업자와 직장인, 재력가 집안의 대학생 등이었다. 이들은 4월 29일 새벽 0시 20분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 앞에 모여  인천공항 고속도로로 출발했다. 이동 중에는 다른 차량이 대열에 끼지 못 하게 한 줄로 운행했다. 올림픽대로를 지나며 1차선에서 3차선으로 차선을 바꾸는 '칼치기' 운전도 서슴지 않았다.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서로 무전을 하며 과속 카메라 위치를 공유하고, '레이싱 대형'을 유지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범죄라는 인식 없이 고가의 차량 여러대가 한 번에 움직이면 관심이 집중 되는 것을 즐겼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 범칙금 부과에 그쳤던 난폭운전이 지난해 2월부터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며 "레이싱 행위가 대형사고, 사망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때문에 지속적으로 단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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