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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정상회담 32번 트럼프 … “문 대통령, 기싸움보다 선물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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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올인했다. 공개 일정을 잡지 않은 채 방미 관련 보고를 받거나 메시지·연설문을 작성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29~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28일 출국한다.

‘정상외교 데뷔’ 국내외 조언 #트럼프, 첫인상 따라 호칭 달라질 듯 #외교 멘토 하스 “혈맹으로 대화 풀라” #백악관 환영만찬하는 첫 외국 정상 #“줄게 있다면 먼저 주고 의제 논의를” #김정숙 여사, 멜라니아 공략도 변수

문 대통령으로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등을 놓고 양국 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강한 캐릭터’의 상대와 일합을 겨뤄야 한다.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 1월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 전화 통화 93차례, 워싱턴으로 정상을 초대해 회담한 횟수만도 32회에 이른다. 정상외교 경험에선 단연 앞선다. 문 대통령은 이번이 정상외교 데뷔전이다.

경험에서 앞선,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어떤 첫인상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호칭도 달라질 전망이다. 지난 2001년 3월 정상회담 때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디스맨(this man)”이라고 칭한 일이 벌어졌다. ‘이 양반’ 또는 ‘이 인사’ 정도로 해석되는 표현이었다. 2003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 때도 이동 중 기자들과 만난 부시 전 대통령이 ‘이지 맨(easy man)’이란 표현을 썼다. 당시 통역은 ‘이야기하기 쉬운 상대’라고 전했지만, 국내에선 ‘만만한 상대’라는 말 아니냐는 논란도 일었다.

반면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부시 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때 미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카트를 운전하며 유대를 과시했다. 이후 회담 때 부시 전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을 ‘프렌드(friend)’라 불렀다.

이번 정상회담 일정에는 백악관 환영만찬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백악관에서 환영만찬을 하는 외국 정상은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발전한 한국 경제를 설명하며 미국에 ‘깜짝 선물’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경제사절단을 통해) 경제적으로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먼저 준 뒤 민감한 의제를 논의하는 게 훨씬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시절부터 8조원의 투자 선물을 미국에 주겠다고 했던 아베 총리는 환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손을 19초 동안 강하게 잡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1일 문 대통령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승’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문 대통령이 회담의 ‘팁’을 구하자 “개인사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의 원칙론자로 꼽히는 문 대통령과 부동산 재벌 출신의 억만장자인 트럼프 대통령 사이엔 교집합을 찾기 쉽지 않다. 다만 조부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자 3세대라는 점이 문 대통령과 접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하스 회장의 조언 이후 문 대통령은 ‘흥남에서 피란 온 피란민의 아들’(지난 23일 6·25 참전 유공자 위로연)임을 부각하고 있다.

하스 회장은 당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월남전 참전 등 미군과 함께 세계 도처에서 싸운 혈맹의 역사를 설명하면 굉장히 대화가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선동가형 트럼프, 냉철하게 상대해야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영부인)’ 코드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순방에는 4년 만에 대통령 부인이 동행한다. 미국 지도층을 관통하는 코드는 ‘가족주의’다. 백악관 만찬 때 김정숙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와 딸 이방카를 공략하는 것도 이번 정상외교의 변수로 꼽힌다.

청와대가 긴장하는 건 돌출 상황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선동가형인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할 수도 있다”며 “신경전이나 기싸움을 함께 벌이는 전략은 옳지 않고, 냉철하게 사전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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